간호사로 살아온 내 인생은 가족보다는 남의 상처와 아픔을 먼저 돌보는 일이었다. 나의 가족도 그런 나를 위해 희생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24년의 간호사 생활을 지지해 주고 묵묵히 도와 주시던 나의 시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치매가 왔고 약해진 몸에 방광암이 찾아왔다. 요양원을 보내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가족들이 돌봤지만 가족 모두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요양원에 모시는 날 가족 모두는 가슴으로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홀로 남겨 두고 온다는 것이 정말 누구보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적응이 힘들었던 시어머니는 요양원 입소 1주일만에 코로나19에 확진되어 병원에 격리가 되었고 이후 쇠약해진 몸 상태로 3주 만에 9kg이나 체중 감소가 되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진행한 결과 방광암이 발견되었고 근육층까지 전이된 암 세포를 사멸하기 위해 33회 방사선 치료를 견뎌야만 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었다. 나와 남편은 깊은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방사선 치료를 위해 가족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시어머니가 희생을 하였던 것처럼 지금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수간호사로 발령받고 4년이 된 지금 병원에 남아 최선을 다해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직급과 무게감에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가능할까? 집이 엉망인 상태에서 과연 병원 일을 함께 병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일 욕심 많은 내가 병원에 휴직원을 내고 시어머니를 돌보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틀 동안 살이 3kg 빠지고 입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나를 믿고 이해해 주는 동료들과 선배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후회가 있겠지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컸다.
팀장님과 상의한 후 가족 돌봄 휴직원을 제출하였고 제출하는 날 많은 눈물이 흘렀다. 병원에 휴직원을 내면서 열심히 달려온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게 슬펐고 나를 믿어온 본부장님과 팀장님, 동료 수간호사들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과 용기에 격려를 보내준 동료들과 선배들의 따뜻한 말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건강하게 빨리 병원으로 복귀하라는 후배들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24년의 나의 간호사 생활 속에 나를 사랑하는 동료들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인하대병원이 있는 것에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휴직을 선택하기 전 고민이 많았지만 한번 뿐일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한 건 참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어머니의 치료가 종결되고 인하대병원에 돌아가는 그날 난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로 다짐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병원에 돌아가는 그날에는 그들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동료, 나를 믿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