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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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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간호사가 되어 소아환자를 본다는 것...

신규부터 10년 넘게 열정을 불태웠던 신경외과를 뒤로 하고 육아 휴직 후 복직한 곳은 혈액종양내과, 그 중에서도 혈액암 환자를 맞이하는 무균병실이었다. 혈액암 환자들의 항암치료와 마지막 목적지이길 바라며 시행되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담당하는 부서였고, 성인뿐만 아니라 소아의 간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신경외과에서도 뇌혈관 기형이나 뇌종양을 진단받은 소아환자를 담당했기에 병동에서 소아를 만나는 일이 두렵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병동의 수선생님께서 아이를 낳은 엄마간호사들이 소아팀에 가면 심적으로 힘들어하는데, 괜찮겠냐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자신했었다. 또한 육아휴직동안 둘째가 심장기형으로 시술받고 병원생활을 하며, 아픈 아이를 둔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다른 누구보다 보호자들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조혈모세포이식 방에서 처음 맡게 된 소아는 초등학교 만 9, 이제 3학년이 된 아이였다. 올해 2월 자반이 생기고 코피와 함께 토혈을 하며 소아청소년과에 처음 입원하게 되었다. 진단명은 중증재생불량성 빈혈로, 수혈 등과 같은 supportive care 후 퇴원했으나 fever로 다시 입원하였다. 발열과 함께 복통으로 시행한 w/u에서 맹장염이 관찰되어 항생제 사용과 함께 금식하며 치료했지만, 복통 빈도가 증가하고 혈변이 지속되었다. CT상에서 맹장염에 의한 장의 괴사와 천공이 의심되어 응급수술로 장절제술과 함께 ileocolostomy를 받고 PICU care를 받게 된 아이였다.

 

환아는 본인이 어떤 수술을 받았고, 어떤 치료가 기다리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나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겁에 질려 있었다. 환아 어머니 역시 응급수술 후 아들 배에 있는 배변주머니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고, 두려움에 쳐다보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아이는 장루pouch를 만지기만해도 두려움에 떨었고 장루pouch가 움직이는 것 자체도 무서워하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려 했다. 엄마 역시 장루교환마다 재료를 주섬주섬 꺼내줬으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보며 "집에 가서 내가 어떻게 하죠?"라고 말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셨다.

 

사실, 10년이 넘는 간호사 생활 중에 신경외과와 혈액종양내과에서 장루 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기에 나 또한 두려움에 컸다. 서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 들킬까, 다시 책을 찾아보고 술기 영상을 찾아보며 나 스스로 먼저 장루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장루교환시마다 안심할 수 있도록 미리 설명하고 여유롭게 대처하며 교환하려 노력했고 환아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일시적인 과정일 뿐임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1주일이 지나자 호중구 수치가 점차 상승하였고 이식 방에서 퇴실하는 날이 다가왔다. 매끼니 멸균된 과자와 씨리얼만 조금씩 먹던 아이는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식탐 가득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웃고 농담도 하며 장루를 몸속으로 곧 넣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며 일반병실로 돌아갔다. 일반병실에서 회복 후 얼마 뒤 퇴원을 위한 장루교육까지 마스터하신 환아 엄마는 간호사실에 여러 번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퇴원하셨다.

 

그로부터 2달 뒤, 동료간호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곳에서 환아와 환아엄마를 마주했다. "? 왜 입원하셨어요." 환의를 입고 있는 환아를 보고 너무 놀란 나는, IV standing에 외과 병동 표시를 보고, "! 드디어 수술하러 오셨어요?", 환아 엄마는 ", 2일전에 수술했는데 드디어 만났네요. 너무 감사해서 병동에 찾아가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이젠 장루 교환하는데 도사가 됐는데, 빠이빠이 했어요." 그 동안 집에서 있었던 일, 장루교환하며 위기였던 일, 등등 이야기하며 환아 엄마는 "처음에 진단받고 이식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세 달을 지옥같이 병원에서 보내고 이렇게 돌고 돌아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어요. 퇴원하기 전에 히크만도 뺀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감사드려요." 처음 환아와 환아 엄마의 울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반갑게 안녕의 인사를 나누었고, 뿌듯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간호사가 되어 소아환자를 본다는 것은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함께 가슴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육아를 하며 자연히 알게 되었던 아동의 발달과정과 아동의 심리, 보호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던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간호에 있어서 소아환자는 연령에 따라 간호사정에 제한점이 있고 환자의 needs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needs까지 동시에 충족시켜줘야 하므로 감정이입을 떠나 needs를 충분히 파악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엄마간호사로서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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