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만... 보호자분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희 의료진들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돈이나 물건, 음식도 물론 받을 수가 없어요.
병원 방침이 그러하니 부디 이해해주세요. 죄송해요…”
마지막 말끝을 흐리며 70대 노인의 두 손에 들려있는 초라한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톱 밑에는 검정 때가 묻어 있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지친 표정으로 중환자실 입구에서 기웃거리는 노모의 모습에서 힘들고 고달픈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손이 지저분해 그래? 아니여~ 아주 깨끗이 씻고, 오늘 새벽 첫차타기 전부터 집에서 싸온거여....
보잘 것 없는 거지만 늙은이 정성이라 생각하고 들어요.. 간호사들 모두 내 딸같아서 그래..” 노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연신 도시락을 들이민다.
정OO, F/29세, 산부인과, 진단명: postpartum bleeding (산후 출혈)
중환자실에서도 중환자가 위치하는 간호사 center 바로 앞자리에 누워 2달째 생사의 끈을 잡고 있는 그녀는 바로... 초라한 도시락을 싸온 노파의 하나뿐인 딸이다.
“아휴~~ 말도 못하게 예뻤지. 암..예쁘다말다. 없는 집 딸로 태어났어도 내 나이 40넘어 귀하게 얻은 자식이야. 동네방네 이쁘기로 소문이 나서 대학 때는 남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니까~~! 그렇게 반대한 결혼을 억지로 하고 아기가 들어서서 이제는 시댁사랑 받고 잘 살줄 알았는디….”
하루 두 번, 짧은 면회시간 바쁜 업무 중에서도 나는 매번 환자 어머니의 한숨 섞인 회상을 듣는다. 그 시간만큼은 노파의 두 눈이 웃었다, 울었다, 빛이 났다, 어두워졌다…
마치 소녀의 눈을 바라보는 듯하다.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 ‘엄마!!’ 하고 외칠 것만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학적용어로 그녀의 상태는 ‘coma status’. 각종 기계의 힘을 빌어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는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이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퇴원했다는 그녀의 아기는 슬픔 속에서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이들에게 대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무력해지는 이 갑갑한 면회시간에도 나는 내 감정을 숨긴 채 그들에게 다가가 감싸 안아줘야만 한다...
보호자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니, 달랑 김치에 흰밥을 김에 말아 싼, 노파만큼이나 초라한 김밥이 민망한 듯 열을 지어 빽빽히 담겨있었다.
8월 한여름 무더위에 꾹 눌려 몇 시간을 버스에 실려 온 모양인지 김밥이 쉬어 있었다.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김밥이 쉬어서일까? 콧등이 시큰한 게 눈앞이 자꾸 뿌옇다.
짧은 면회시간, 아쉬운 듯 돌아보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는 노파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보호자분! 김밥이 너무 맛있겠어요!! 나눠서 잘 먹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침상 위에 붙여진 결혼식 사진 속 어여쁜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예쁘게 웃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