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임상 간호사로 일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환자를 대할 때는 여전히 긴장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간호사로 살면서 좋았던 기억과 안 좋았던 기억, 그리고 뿌듯했던 기억, 또는 잊고 싶은 기억 등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한 할머니가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한 결과 담관암 진단을 받으셨다.
할머니는 잦은 검사와 점점 길어지는 입원 기간 등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셨던 것 같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많이 닮으셔서 기억에 많이 남고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편이 뭉클하다.
장기간 금식으로 인해 여러 가지 수액과 항생제 주사를 맞으셨는데 정맥혈관상태도 좋지 않아서 자주 붓고 또 자주 터지는 경우가 있었다.
할머니께 다시 정맥주사를 놓아드리면 “어쩜 이렇게 한 번에 할까, 너무 고맙네.” 하셨다.
“얼굴이 어제보다 좋아 보여요.” “밖에 날씨가 따뜻한데 휠체어 타고 잠깐 바람 쐬고 오세요.”
“오늘은 별일 없으셨어요?”라며 안부와 함께 손을 잡아드리면 환하게 밝아지는 할머니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걷지도 못하고 사람도 잘 몰라보셨다.
의식이 혼미해지는 탓에 한번은 관장을 해드리고 나서 ‘힘든데 고생하셨다’며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해 드리자 따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할머니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는 고된 병마와 싸우시다가 임종하게 되었다.
내가 간호하던 환자가 임종한다는 것은 매번 겪으면서도 늘 충격이고 스트레스이며 상실감을 준다.
하물며, 가족들은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쁜 업무 속에 할머니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간호사실 앞으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는데 바로 할머니의 딸이었다.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나에게 꼭 전할 말이 있어 찾아왔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생전에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얘기 하셨다며 고마움의 인사와 작은 인형을 전해 주러 오신 것이었다.
보호자도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고 보호자 분도 병원에 안 계시지만 그때 받았던 인형을 보면 아직도 할머니와 따님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난다.
그래서 가끔 인형을 보며 ‘초심을 잃지 말자.’ ‘오늘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자.’라고 혼자 이야기를 하고 다짐도 해본다.
할머니의 그 행복한 미소와 고마운 마음이 잊혀 지지 않는다. 진심을 담아 마음으로 전달한 것은 진정성 있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환자의 말 한마디에 힘들었던 하루가 풀리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간호사라는 직업, 이것이 바로 선물이고 보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