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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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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헤어짐을 익숙하게 만드는 곳이다.

병원은 헤어짐을 익숙하게 만드는 곳이다.

반복된 입원과 퇴원은 누군가를 보내는 것을 익숙해지게 하고, 반복되는 사직과 이동에 동료를 보내는 일도 낯설지가 않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병원에서는 죽음과 삶의 경계도 그리 멀지않아, 나는 누군가를 영원히 보내는 일에도 아주 조금은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 막상 내 환자가 나의 근무 때 죽음을 맞이하면 그 일은 절대 잊혀지지 않고 오래 기억된다.

 

나는 신경외과 병동에서 근무했었다. 신규로 그곳에 발령받아 근무한지 채 3년이 되지 않았을 때,내가 간호하던 환자가 나의 근무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험을 했다.

 

어린 친구였다.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느라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겠지만, 그는 한창 꿈이 많을 고등학생의 나이였다. 아이의 엄마, 아빠가 병원에서 지내게 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반복된 입원과 퇴원의 과정이 있었지만 먼 지방인 아이의 집까지 내려가기에는 아이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는 꽤 오랜 기간 우리 병동 준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의 심장과 폐는 일 하고 있었지만 그의 뇌는 그곳에 침범한 종양 때문에 이미 많은 기능을 잃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신체 기능은 악화되었다. 아이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했고, 부모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오전 그를 진료하는 담당 의사는 그의 부모에게 그의 심장과 폐도 오랫동안 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심장과 폐의 기능을 조절하는 그의 뇌까지 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부모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부모는 의사의 말을 듣는 내내 덤덤했다고 했다.

 

나는 그날 밤 그를 간호하는 담당 간호사였다. 저녁부터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불안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때 그의 몸에 부착되어 있던 심전도 모니터 기계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급상황이었다. 응급상황을 알리고 응급처치를 할 모든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에게 더 이상 힘든 처치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 밤 그를 보냈다.

 

환자가 사망하면 의료진도 순간 마음을 다잡기 힘들다. 하지만 환자가 장례 할 곳과 이동 방법, 사망진단서 등 이후에 챙겨야 할 일들이 계속 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힘든 환자의 가족이 내 옆에 있다. 의연한 척 덤덤한 척 이후의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나의 눈과 코는 빨개져 있었다.

 

그를 곱게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흰 천으로 덮고 나서 아이의 엄마는 깨끗하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 병실 앞 세면실에서 드라이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는데 드라이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슬펐다.

 

엄마는 혼자 중얼거리며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랑 아빠랑 우리 ㅇㅇ이 이제 집으로 가자.

의사가 사망진단을 내리는 그 순간에도 나는 목석처럼 얼어 있었다. 내가 어떤 감정을 표출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의 엄마를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병원에서 그때까지 본 가장 슬픈 모습이었다. 아이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단장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슬펐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일은 아름답고 설레는 일이어야 하는데, 엄마의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병원에 있었던 많은 날들 동안 엄마는 상상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는 일,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일, 아이와 함께 예쁘게 단장하고 데이트를 하는 일

불가항력적이었다 해도, 그 바람을 이뤄드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의 엄마는 그가 입원할 당시 입고 온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병동을 나섰다. 우리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남겼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가장 많이 힘들었던 사람은, 가장 많이 수고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조심히 가세요.”

이 말 이외에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와 아이의 부모를 보내 드렸다. 덤덤히 떠나는 부모의 뒷모습이 너무도 슬펐다. 오랜 병원 생활로,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일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했던 그 상상으로 오늘은 덤덤하지만 내일은, 어느 순간은 문득문득 오늘의 기억이 너무도 아플 것 같아서, 나는 두 분을 위해 기도했다.

이겨나갈 힘을 주세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생각난다.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엇을 하시든지 아이의 가족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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