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대학병원에 입원하신 할아버지를 병문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조용한 병실에서 간호사들이 무표정하게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반복되는 업무에 지친 그들의 표정은 이해되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그 무표정이 병실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날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공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눈빛을 건넬 수 있다면, 이 병실이 덜 외롭고 덜 무섭지 않을까?”
그 순간부터 저는 ‘간호사’라는 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곁을 따뜻하게 지키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병이라는 건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분위기,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걸 이때 느꼈습니다. 이날의 경험은 제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았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 공간에 선다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순히 주사를 놓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에게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이 제가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날이었습니다.
첫 병동 근무는 쉽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외우고, 빠르게 돌아가는 업무에 적응하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 3개월 만에 ‘칭찬 간호사’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놀랍고도 벅찼습니다.
“밝은 미소가 큰 위로가 되었다”,
“힘든 시간 속에서 간호사님의 표정 하나에 용기를 얻었다”
이런 말을 해주신 환자분들이, 제가 가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말들은 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날 이후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앞에서는 밝은 얼굴로 서겠다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항암 병동에 배치되며 그 다짐은 더 깊어졌습니다. 치료를 앞두고 두려움에 떨던 한 환자분은, 처음엔 말을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저 매일 웃으며 이름을 부르고, 짧게라도 안부를 묻는 걸 반복했습니다. 몇 주 후, 그 환자분은 제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간호사님은 이상하게 부담이 없었어요. 옆에 그냥 있어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몇 달 후, 완치 판정을 받고 외래를 방문하던 날, 일부러 병동을 들러 저를 찾아주셨습니다.
“그때 내 곁에 아무 말 없이 밝은 미소로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그게 제겐 큰 힘이었어요.”
그 말은 제가 지금껏 간호사로 살아오며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간호는 단순한 돌봄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정해진 업무를 넘어, 환자의 불안에 공감하고 그 마음에 조용히 손을 얹는 일.
저는 앞으로도 환자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간호사들에게도 긍정적인 기운과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회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이끌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 선택이 늘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