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22년 차 간호사입니다. 오랜 시간 간호사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환자의 삶을 지켜봤고, 때론 그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있습니다.
이브닝 근무 중, 입원계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병동에서 입원 중이던 환자분이 임종이 가까워 1인실로의 이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환자분은 다인실에 계셨기에 가족의 면회조차 어려운 상황이었고, 연명의료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해당 병동의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보호자에게 연명의료계획서를 설명드리고, 동의서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확인한 후, 환자분을 제가 근무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1인실로 이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잠시 후, 첫째 딸과 둘째 딸, 그리고 사위가 환자 곁을 찾았습니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고, 이 상황이 아직 낯설고 무거운 듯 보였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환자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환자분께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분이 통증 없이, 불안 없이 마지막 시간을 평온하게 맞이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족분들의 따뜻한 손길과 목소리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러자 첫째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면회를 하려면 1인실로 가야 한다고 해서 동의서를 써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사인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혹시 충분한 설명 없이 동의만 받게 된 건 아닐까. 가족이 이 상황을 오해한 채 마지막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간호사로서 제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마음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단순한 업무가 아닌 사람의 삶과 사랑을 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분 곁에 함께 계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전하지 못했던 말, 감사했던 마음, 사랑했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환자분께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처음에는 “산소도 안 주는 거냐”, “수액도 중단하는 거냐”라며 걱정하던 보호자분들도, 30분 넘게 진심을 담아 대화를 나눈 끝에 점차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마침내 두 딸은 환자 곁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고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임종은 끝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한번 전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저는 간호사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에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이 평온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 그것은 제가 간호사로 살아가는 이유이자, 매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힘입니다.
그날, 저는 다시 깨달았습니다.
간호는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