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하나 즈음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수많은 환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트럭에 깔려 군데군데 골절을 입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해주던 유oo 환자.
기관절개를 시행한 상태인데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환타” 음료수를 애타게 찾던 김oo 환자.
폐가 약하게 태어나 다 피어나지도 못한 꽃으로 생을 마감한 만 3살의 이oo 환아.
알코올 섬망 증상으로 사지가 묶여있었으나 화장실을 가겠다고 대차게 보호대를 끊고 뛰쳐나와 오물처리실에 달려가 바닥에 대변을 푸짐하게 보았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까지 그 당시 장면이 눈에 선한 그 환자.
그 밖에 많은 환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장oo 할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환자이다.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장oo 할아버지는 내가 이제 막 신규를 벗어나 2년 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 만났다.
땡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빼빼 마른 장씨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빼빼 마른 탓에 기흉을 달고 살았고, 만성 폐쇄성 폐 질환(COPD)으로 ICU를 여러 번 드나들던 분이다. 우리의 만남도 이 COPD가 만들어냈다.
우리의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동맥혈 가스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할아버지의 이산화탄소는 쉽게 빠지지 않아 검사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검사를 한 뒤, 다시 보호대를 적용하려던 순간 할아버지는 입에 있던 기관 내 삽관 튜브를 순식간에 뽑아버렸고 크게 외쳤다.
“시xx아 !!!”
할아버지는 분명 검사 전까지 커다란 눈망울과 몇개 남지 않은 치아를 선보이며 아기처럼 웃어줬는데 .... !!
심한 욕을 들었고 응급상황에 처한 나였지만, 내 눈에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할아버지라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산소 수치도 유지가 잘 되고 이산화탄소 수치도 안정화되어 며칠 뒤 일반 병실을 갔고 퇴원까지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할아버지는 다시 중환자실을 찾으셨다. 그것이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번에 장씨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것은 폐렴이었다.
할아버지는 항생제를 독하게 쓸 수밖에 없었고, 가녀린 몸은 독한 항생제를 이겨내지 못했다. 콩팥 기능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눈망울은 퉁퉁 부은 눈두덩 때문에 실눈이 되었고, 나보다 가는 팔과 다리는 손과 발을 중심으로 해서 나날이 커져만 갔다. 연세가 연세인지라 가족분들은 고민 끝에 투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할아버지의 혈압은 낮은 줄 모르고 떨어졌고, 다시 수많은 고민 끝에 연명 중단을 하기로 했다.
날 보면 늘 웃어주던 장씨 할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하고 거진 매일 자고만 있었다. 코로나 창궐 전 시절이라 면회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때. 장 할아버지의 보호자분들은 면회를 와서 잠만 자는 할아버지만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쉬운 면회를 마친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할아버지가 눈을 뜬 것이다.
“할아버지!! 방금 가족들 왔었는데!! 기억나요? 잠만 자서 서운하대요!!”라고 말하자 아기 같은 얼굴로 방긋 웃으며 끄덕이던 장씨 할아버지.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급하게 보호자분께 전화를 했고 주차장까지 갔던 보호자분들은 다시 중환자실로 달려오셨다. 다리가 불편하던 아내분, 만삭의 며느님,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드님까지.
장씨 할아버지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눈을 뜨셨던 것일까.
가족들이 다시 올 때까지 눈을 뜨고 있을 거냐는 물음에 끄덕이던 할아버지는 그들이 오기 직전에 다시 깊은 잠에 빠지셨다.
보호자분들께 “분명 종전까지 눈을 뜨고 계셨고 그걸 못 보셔서 너무 아쉽다, 할아버님이 면회 온 걸 다 듣고 계셨다”라고 설명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주 보게 해 드릴 기대감에 차 있던 나였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고 아쉬움에 눈물이 났다. 보호자분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 주셨고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장씨 할아버지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아직까지 장씨 할아버지의 커다란 눈망울과 아기 같은 미소가 또렷하게 생각난다.
환자들과 조그마한 기억 하나하나가 추억으로 쌓이고, 그 추억이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에 가족을 대하듯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인 내가 항상 완벽할 수 없겠지만, 그 한계마저도 소중한 배움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나의 간호사 생활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진심이 닿으면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 길지도 짧을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에 후회는 없도록 환자를 향한 나의 진심이 그들에게 닿도록 열과 성을 다해서 노력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소중한 경험과 따뜻함을 선물해준 장씨 할아버지에게 마음속 그리움의 편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