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매 순간이 긴장과 사투의 연속이다. 환자들은 언제든 급격히 나빠질 수 있고, 보호자들은 초조함 속에서 기적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신규 시절부터 중환자실에서 근무해 지금까지 13년째 일하고 있는 간호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는 한 환자가 있다.
그는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의안을 착용하던 70대 할아버지였다. 폐암으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지만, 인공호흡기와 항생제 치료에도 차도가 없었다. 점점 높아지는 산소 요구량과 악화되는 컨디션으로 언제 떠나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의식만은 또렷하셨다. 긴 재원 기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정을 쌓았고, 나는 하루라도 더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드리려 노력했다.
메르스와 코로나 이전, 중환자실에서는 하루 두 번 면회가 가능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의 의안 부위에 계속 눈곱이 생겨 안과 협진을 의뢰했지만, 응급 상황이 아니라 즉각적인 조치는 어려웠다. 마침 면회 시간이 되어 딸이 찾아왔고, 할아버지가 아직 안과 진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환자를 방치하는 것 아니냐"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당시 젊고 경험이 부족했던 내게 그 말은 너무나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보호자의 입장을 알기에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침대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며 딸을 향해 삿대질하셨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만으로도 딸을 나무라는 모습이 분명했다. 내 편을 들어주시는 그 마음에 울컥했고, 딸도 더 이상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알게 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간호사를 위해 하루 30분 면회 온 딸을 나무라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그분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셨음을 느꼈다. 그 감격은 이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누군가는 나의 연민을 이해해 주겠지.’
중환자실은 차갑고 긴박한 공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그리고 그 온기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간호사로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