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겨울, 자라온 대구를 떠나 도착한 인천의 눈바람은 유독 차가웠다. 꿈꾸던 수도권의 대학병원 입사였지만, 낯선 타지에서의 시작은 살을 에듯 추웠다.
유독 눈이 많이 내렸던 그 겨울, 나의 첫 부서는 중환자실이었다.
창밖에는 낭만적인 눈이 쏟아졌지만, 안은 생사를 넘나드는 거친 숨소리와 기계음이 가득했고 매일이 전쟁인 것만 같았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수만 번 고민하면서도, 먼 길을 오가며 방을 얻어주신 부모님, 가구와 가전을 옮겨주던 친척들, 그리고 나보다 더 기뻐해주시던 교수님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힘들 때 마다 그들의 감사함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근무했다.
한 달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던 날, 선임선생님이 내 가운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엄마처럼 조용히 지워주셨다. 그 따스한 손길에 긴장이 풀린 내가 화장실 위치를 묻자, 선생님은 깜짝 놀라 되물으셨다.
“한 달 동안 화장실 한 번도 안 갔니?”
그제야 깨달았다. 화장실 갈 생각조차 잊을 만큼, 간호사로서 제 몫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되돌아보니 그 절실함과 긴장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힘이 되었다고 느낀다.
어느덧 24년이 흘러, 나는 이제 비뇨의학과 병동의 수간호사로 환자들을 마주한다. 암이라는 중병 앞에 밤새 숨죽여 우시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을 때면, 내 가운의 얼룩을 닦아주던 선배의 마음을 떠올리며 진심어린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오늘은 우리 부서 신규 간호사들의 1년 ‘돌잔치’ 날이다. 부서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꽃과 명주실을 건네며 “오래오래 함께 하자”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업무 부적응으로 밤잠을 설치는 신규 간호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랬어” 라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서툴지만 지금의 그 진심이 쌓여 결국 누군가를 살리는 단단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