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만든 기적
지난해 봄, 따스한 햇살 속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한 환자를 만났다.
남성 환자가 외상성 급성 경막하출혈(T-SDH)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그는 사고 직후 처음 찾은 병원에서는 긴 대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고, 결국 우리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그러나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병원으로 오는 1시간 동안 환자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끝내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도착 직후 응급 수술이 진행되었지만, 담당 교수님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최선을 다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해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젊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았던 환자를 바라보며 의료진 모두의 마음은 깊이 무거워졌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환자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사랑과 기적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환자는 생명이 꺼져가던 순간에도 어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을 위해 무려 6개월을 우리 곁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연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사랑의 증명이자 작은 기적이었다.
환자의 어머니는 병원에 도착해 아들의 마지막 곁을 지키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준비할 시간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의료진 모두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우리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지만, 대부분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는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과 준비하며 맞는 이별의 차이를, 어머니는 삶으로 보여주셨다.
작별의 시간
환자의 어머니는 비통한 마음속에서도 의료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꼭 잡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순간조차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슬픔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의료진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참아내는 슬픔 속에서도 감사와 존중을 전하던 어머니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다. 원칙적으로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지만,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환자였기에 결국 장례식장에 찾아가 나는 그분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한마디를 건넸다.
“너무 많이 울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께 차마 행복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다.
“어머니,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그 어머니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의료진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어쩌면 기적이란 단순히 생명을 살리는 것만을 뜻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아들과 작별할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그것 또한 기적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문득 한 뮤지션의 앨범 글귀가 생각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기로 승리를 바라는 것이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한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이 때로는 허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은 그것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쉽게 대하고, 소중한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는 사랑이 가진 위대한 힘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어머니는 날씨가 좋든 나쁘든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 아들을 면회했다. 끝내 아들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선물했다. 그녀는 그 순간 아들과 함께하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해 약속했고, 서서히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사랑은 끝까지 남아 우리를 붙들어 주며, 그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다시 간호사로 돌아가며
나는 오늘, 이 경험을 가슴 깊이 새기며 다시 간호사의 길을 걸어간다. 이번 일을 통해 어떤 간호사가 되어야 하는지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대할 때, 단순히 치료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마음과 존엄까지 지켜내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때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과 따뜻함으로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고 싶다.
모든 의료진과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이고, 행복이며, 간호의 본질이라 믿는다.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며, 앞으로도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사랑은 끝내 우리 곁에 남아 기적을 만든다. 나는 그 사랑을 간호로 지켜내며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