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및 관련 시행규칙에 따라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은 임종실을 반드시 설치해야 했다.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그 임종실이 우리 병동에 설치되었다. 호흡기내과 병동인 우리는 음압병실이 있어 2020년부터 약 2년간 중증 코로나 환자들을 간호해왔다. 이제는 임종실까지 운영해야 한다니 부담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임종실 운영 준비 과정에서 수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임종을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하는 우리를 위해 심리적 지지가 필요하다며 종교인과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초청해 특강을 열어주셨다. 서로에게 격려 메시지를 나누고 심리 회복 워크숍도 진행하면서, ‘임종실 운영’이라는 같은 배를 탄 동료들과 더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임종실 개소 일이 다가오자 병실 꾸미기에 박차를 가했다. 부드러운 색상의 커튼과 천사 모양의 커튼 집게, 가족들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도록 블루투스 스피커, 은은한 조명을 위한 작은 스탠드까지 준비했다. 무엇보다 라벤더 향 디퓨저를 두어, 임종실 안에 퍼지는 향기가 이별의 아픔을 감싸고 마지막 길을 평온히 지켜주기를 바랐다.
드디어 만반의 준비 끝에 임종실이 문을 열었고, 첫 환자를 내가 맞이하게 되었다. 4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그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가족과 함께 존엄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환자보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간호사실에 모여 나와 함께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은 아내와, 내 자녀보다 어려 보이는 딸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간신히 참았다.
임종실을 준비하며 보호자를 위한 기도문도 마련해 두었지만, 아빠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딸아이와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의 아내 앞에서 차마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그들의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임종실을 거쳐 가는 여러 환자를 보며 깨달았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게 언제나 깊은 상실과 슬픔을 남긴다는 것을.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우리가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곁을 지켜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 속에서도 사랑과 존엄은 조용히 머문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수선생님은 매년 부서의 비전을 세운다. 2025년 우리 병동의 목표는 ‘낭만’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낭만을 찾는 병동이 되기를, 그리고 임종의 순간에도 평온과 위로가 머무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라벤더 향처럼 은은하지만 오래 남는 기억, 그 향기 속에서 환자와 가족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낭만’이 아닐까 한다.
죽음 앞에서도 존엄과 사랑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이유이자, 병동의 작은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