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내가 본 간호사는 늘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초등학교 시절, 처음 작성한 장래희망은 ‘간호사’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4년간 간호학을 공부했고, 1000시간이 넘는 실습을 견뎌냈다.
마침내 국가고시에 합격한 날, 나는 이제 진짜 ‘행복한 간호사’가 될 차례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책에서 본 것과 너무나 달랐다.
배정받은 부서는 신경외과 중환자실.
귀를 찢는 알람 소리, 환자들의 알수 없는 신음와 욕설, 복도를 분주히 오가는 의료진들.
내가 실수라도 할까 쏟아지는 선배 간호사들의 눈초리.
그 속에서 나는 얼어붙지 않은 얇은 빙판 위를 걷는 것처럼 늘 불안정하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내가 환자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내가 간호사를 선택한 건 잘못된 결정이 아닐까?"
작아지는 마음은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일하는 법을 깨우쳤다고 생각한 그날이였다.
응급실에서 SAH로 응급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입실하는 환자를 받아야했다.
나름대로 받을 준비도 하고 물어볼것도 정리해놨는데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교수님과 당직의가 함께 입실하면서 구두처방을 쏟아내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인계장을 들고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늘 무뚝뚝하고 조금은 무서웠던 선임 선생님이 조용히 내게 말했다.
“환자 정리하면 알려줘. 내가 봐줄게.”
단 한 마디. 그 한 문장이, 무너질 뻔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환자 정리를 마치고 선생님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 선생님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선임이 있는 이유가 뭔데. 너도 후배 생기면 똑같이 해주면 되는 거야.”
그날 이후, 그 선생님은 더 이상 무뚝뚝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이제 입사 7년 차가 되어, 많은 후배 간호사들이 생겼다.
감사 인사를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건네는 후배들을 볼 때면, 예전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생님도, 나처럼 어느 날 같은 말을 선배 간호사에게 들었을까?
선한 영향력은 그렇게, 한마디씩 이어져 가는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한마디’를 새길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