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그만 하믄 안된다니? 나는 그냥 그만하고 죽어뿌렀음 좋겠는디..
왜 사람을 데려다가 여기저기 구멍만 뚫어놓고 사람을 다 바보를 만들어놨다니..”
벌써 몇 해째..
몸이 힘들때마다 가족들을 앉혀놓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2011년 손이 저리다며 신경과를 찾은 할머니에게 만성신부전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서
할머니의 모든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시골에서 스스로 생활하던 패턴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투석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 되어 무기력한 나날에 지쳐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4시간씩 누워서 평생을 해야 하는 혈액투석..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지독한 세계다.
“이런 더러운 병에 걸려서 평생 이 짓거리를 해야해?? 차라리 죽는게 나아!”
수 년째 투석을 하는 환자들의 수없는 푸념을 들으면서
“그런 말 하지마세요. 암에 걸려서 병원에서 꼼짝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 일상생활 다하면서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잘 살고 계신걸로 감사해 하셔야죠.” 하고 기계적으로 수없이 답했던 나의 지난날..
하지만 의료인으로서의 입장과 가족의 입장은 너무나 달랐다.
사실 인공신장실에 근무하면서 단 한번도 내게 이런 일이 가까이 오리라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혈액투석, 투석중 저혈압은 일쑤고 다리경련도 반복되었으며 아무리 교육해도 식이조절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카테터를 잡을 때마다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곤 했던 할머니.. 잡는 카테터마다 감염이 돼서 항생제치료가 끊이질 않았고 관이 막히기도 일쑤였으며 혈관이 안좋아 동정맥루 수술도 어려웠다.
시술도중 급격한 상태악화로 중환자실에 누워 기관삽관을 한 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가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간호사로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련의 모든 과정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어느 노래가사에 ‘입장바꿔 생각해봐’라고 했던가..
기계적으로 환자에게 감정없이 설명하던 나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할 일만 하느라 마음을 쓰지 않았던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이제서야 알아버린 것이다.
간호사로서의 삶은 할머니의 투석 전과 후로 달라져버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감정뿐아니라 가치관도 다시 정립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존엄할 수 있는 권리..
한편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간호사라는 이유로 아니 더군다나 인공신장실 간호사라는 이유로 모든 친척들의 질문과 결정권에 참여해야 했던 나는 어쩌면 할머니의 안위보다는 나의 안락함을 잃어버린 것이 더 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이 카테터문제만으로도 계속 길이 막히고 있는데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때문일지도.. 아니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할머니를 돌보느라 지쳐가는 가족들의 모습과 매일같이 반복되는 할머니의 푸념 때문이었을지도..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할머니에게서 나를 묶어두었다. 자유롭지 못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만약 투석을 하지 않고 그냥 일상생활을 하시게 했더라면 할머니의 삶이 조금 더 존엄해질 수 있었을까..?’
이런 나의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3년이 넘는 힘든시간을 보내시다 여든 다섯 생일을 일주일 남겨두고, 지난 주 비로소 할머니는 이제 자유로워지셨다. 영영..
“그래도 현희 니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있으니께 선생들도 잘해주고 마음도 편허고 좋아..아이고 근데 내가 얼른 가야 니들도 고생안허고 한갓지지..” 할머니의 말씀이 뇌리를 맴돈다.
나는 내가 환자들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다 안다고 자만했다. 허나
‘내가 니 마음 다 알아.’ 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 역시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타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너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는, 그 따뜻함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그것을 참으로 몰랐다.
그 따뜻함이면 충분하다. 곁에 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에 눈시울이 또 붉어진다. 할머니에게 나는 아주 크나 큰 사랑을 배웠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 처치와 간호만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려는 작은 모습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간호사라는 이 값진 직업을 가진것을 감사해하며 평생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게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
곁에 계실때는 미처 몰랐던 소중함, 이제 더 이상 손을 만질수도, 서로 눈맞춤 할 수도, 대화를 할 수도 없지만..
출근해서 매일 만나는 환자들 속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 할머니를 보고 느끼고 만난다.
할머니, 이제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세요. 할머니의 선물을 잊지 않고 간호사의 소명을 다하며 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