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7일 새벽 3시 10분경 응급실로 도착한 이00(22세)산모가 분만실로 올라온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8월 6일 오후 9시경부터 발생된 labor pain으로 보호자 없이 혼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내원했고, 한번도 산전 진찰을 받지 않아 임신 30주 정도로 추정된다는 인계를 받았다. 분만실 입실당시 active labor pain을 호소하여 주치의는 즉시 초음파를 시행하였고 초음파상 태아는 임신 약39주 정도로 추정되었으며 간단한 정보조사를 통해 산모는 현재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위에 임신사실을 알리지 않은 미혼모임을 알 수 있었다.
분만실 입실당시 내진결과 자궁경부가 full로 개대되어 분만이 임박한 응급 상황이었다.
한번도 산전진찰을 받지 않아 아기의 건강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출생 후 아기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만일의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산모의 산과력 및 과거력, 흡연력, 음주력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고 신생아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 상황에서 분만 진행상황을 지켜보았다. 분만실 도착 후 약 30분이 경과한 8월 7일 오전 3시 48분에 자연분만을 통해 건강상태가 양호한(Apgar score 9->9점) 3.16kg의 예쁜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준비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출산으로 산모가 많이 놀란 상태였기 때문에 분만 후 1시간정도 조용한 방에서 안정을 취하게하고 BP monitoring 및 산후출혈을 관찰하며 산모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임신기간 동안 산전 진찰을 받지 않은 탓에 입원당시 Hb은 9.9g/dL에서 분만후 8.1g/dL로 빈혈이 심한 상태였고, 보호자도 없이 어린나이에 갑작스럽게 출산을 하게 되어 신체 간호를 하는데 있어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 산모에게 조심스럽게 history taking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산모는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종일관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며 협조적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서적 지지를 통해 산모를 안정시키고 1~2시간이 경과한 후 산모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환경에서 다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산모의 이야기를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침묵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한참이 지난 후 산모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며 임신기간 동안 있었던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모는 현재 대학교 4학년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던 중 학교가 끝나고 늦은 밤 기숙사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얼굴만 알고 지내던 한 대학선배로부터 주차장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너무 무섭고 불안했지만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에 가족이나 주변사람에게조차 알릴 수 없었고 워낙 생리주기가 불규칙했기 때문에 임신인줄 모르고 지내다가 6개월이 지난 후 배가 불러오고 태동을 느끼면서부터 임신사실을 자각했다고 한다. 복대로 부른 배를 감추며 학교생활을 했고 수업이 끝나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해 바로 기숙사로 돌아와 자는 척을 하며, 혹시나 남들이 알게 될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가부장적이고 엄격하신 부모님아래 성장했기 때문에 가족들에 조차 알릴 수 없었고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일이 있다는 핑계로 기숙사에서 생활 하며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외출조차 자제했다. 임신임을 알게 된 이후 무섭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아기를 포기하려고 여러 차례 생각했지만 아기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차마 아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기를 데려다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출산 후 입양 이라는 힘든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후 틈틈이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출산비용과 함께 태어날 아기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기이름으로 된 적금통장도 만들며 아기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산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린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수치심, 죄책감으로 무척 힘든 모습이었다. 대화 중간 중간에 긴 침묵의 시간이 많았지만 침묵조차도 산모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기다려주며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산모는 대화를 마친 후에도 한참동안 눈물을 보였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산모에게 가장 필요했던 간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상대방의 진실된 마음과 따뜻한 위로, 경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분만 후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유방울혈로 인한 통증을 예방하기 위해 breast binder를 감아주고 주치의에게 상황을 전달하여 젖 말리는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하도록 하였다. 학생 신분의 미혼모로 몸조리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적 상황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칫 출산 후 몸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육 자료를 이용하여 산후관리에 대해 설명하고, 빈혈교정을 위해 입원기간동안 철분제를 IV로 투여하고 분만 후 3개월까지 처방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하도록 교육하였다. 그리고 산모가 가장 걱정하는 입양문제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상황을 수간호사님께 보고하고 입양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홀트 아동복지회 담당자와 연계하여 상담을 연결해 주었다. 그러나 2012년도에 개정된 우리나라 입양 특례법상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한 후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 키우면서 일주일동안의 숙려기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입양이 가능하다는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산모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산모의 사정을 알게 된 신생아실과 산부인과는 협의를 통해 아기를 일주일동안 신생아실에서 보호해주기로 결정한 후에야 비로소 산모는 퇴원 할 수 있었다.
이후 일주일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 아기가 홀트 아동복지회로 떠나는 날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가진 돈도 없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어린 엄마였지만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아기이름으로 된 적금통장과 편지 한 장으로 아기의 행복을 빌어주며 울고 있었다. 비록 어린 엄마였지만 마음만큼은 모성애로 가득 찬 진정한 엄마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퇴원 후 2주가 될 무렵 산모의 건강상태가 걱정되어 해피콜을 시행하였다. 산모는 건강한 상태로 이전의 학생신분으로 돌아가 비교적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며 지낸다고 안부를 전했고 입원기간동안 마음을 다해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나라 여건상 미혼모가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임신한 여성이 한 생명을 소중히 여겨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2012년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와 1주일간의 숙려기간이라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입양을 감소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겠지만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게 아기를 유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적 부작용이 있다. 이 산모의 경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을 하게 되어 임신 기간내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텐데 어쩌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산모가 오히려 입양특례법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또 한번 고통 받는 것을 보고 미혼모라는 현실적 장벽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분만실에서 근무하면서 아기의 울음소리에 웃음 짓던 많은 행복한 산모와 달리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터져버린 어린 미혼모의 눈물은 잊지 못할 순간인 것 같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대신 사랑과 모성애로 아기를 품은 어린 산모에게 생명에 대해 다시 한번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이런 아픔으로 고통 받는 여성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