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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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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림 뒤 맑음

 저는 신규딱지를 뗀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은(?) 풋풋한 2년차 간호사입니다. 지난 1년동안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제가 근무하는 정형외과 병동의 특성상 다른 암 병동이나 중증도 높은 병동보다 드라마틱하게 감동적이고 기억에 남을만한 일들은 솔직히 겪어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간호사들이 그러하듯 웬만한 희노애락은 다 겪어봤고, 소소하게나마 행복했던 기억들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저의 성장기와 간호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경험담을 풀어놓을까 합니다.

 

대학교 1학년 말이었습니다. 사회의 시작이자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학에 처음 발을 내딛고 나서 처음은 모든게 신기했고 뭣 모르고 마냥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학점을 더 받기위해 동기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져만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혼란도 겪고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 결국은 사람이 미워지고 그리고 동기끼리 경쟁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현실이 원망스러워서 매일같이 울면서 가족이고 친구고 마음이 굳게 닫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일년같이 보내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겨울방학을 이용해 용기내어 자대병원 응급실 아르바이트를 지원했고, 2달여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을 접하고 임상의 매력적인 모습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어졌고, 그때 처음으로 간호학과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소중한 경험은 제게 큰 힘이 되었고 오로지 간호사가 꼭 돼야겠다는 일념으로 남은 대학생활을 즐겁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렇게 고대하던 임상에 합류했는데 대학 때와는 또 다른 사회생활에 당황하고 적응을 못해 다시 인생에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들 아실겁니다. 마치 군대를 연상케 하는 ‘-,,말투부터 시작해서 사회 초년생의 눈에는 딱딱하고 차갑기만 한 선후배 관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죠. 환자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렸다는 것. 내 인생도 아니고 남의 인생, 남의 생명이 내 손안에 달렸다? 이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그렇게 저의 하루살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때 그렇게 멋지고 매력적으로만 보였던 임상이,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일은 고되고 환자, 보호자들의 온갖 컴플레인에 치이고, 어떤 상황이든 뚝딱뚝딱 일처리 하는 윗년차 선생님들과는 달리 헤매고 실수만 늘어놓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 보여 자괴감에 빠지고,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시간은 흘러갔고 저는 어느정도 일에 적응해나가면서 어느덧 간호사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도 생기고 시야도 넓어져 세상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대퇴골 골절로 입원했던 한 노인 환자가 있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력징후를 측정하면서 환자분을 스윽 봤는데 입원당시에 비해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된 것을 한눈에 봐도 딱 느낄 수가 있었고, 그 순간 너무나도 기뻐서 어머나 세상에! 얼굴에 생기도 돌고 부기도 많이 빠지고 몰라보게 좋아지신 것 같아요~ 곧 집에 돌아가실 수 있겠는데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입원기간 거의 내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죽음을 생각할 만큼 비관적이고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던 분이 이젠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 나 퇴원해도 된데~ 그동안 내가 짜증도 내고 욕도 많이 하고 못되게 굴어서 많이 섭섭했지? 너무 상처받지 말고, 군말 없이 노인네 진상 다 받아주느라 수고했고 고마워~ 우리 손녀 같아서 참 안쓰럽고 미안하네.” 라며 제 손을 꼬옥 감싸고 말하시는데 그게 그렇게도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 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들이 어두운 얼굴로 입원해서 웃으면서 퇴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것은 물론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나의 간호가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참 가치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간호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환자, 보호자들 응대하다 보면 힘든 일도 참 많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로부터 위로도 많이 받고 날 웃게 해주는 활력소이자 어떨 때는 탈출구였고,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내가 힘들고 지쳐 보일 때면, 조금만 더 힘내라고 토닥토닥 해주면서 이거 먹고 기운내라며 간식까지 주시고, 여러모로 딸처럼 손녀처럼 챙겨주시는 보호자와 환자분들.. 또 이쁜 누나~하면서 휠체어 타고 쫓아다니는 남동생 같은 환자들은 힘든 와중에도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농담도 주고받고 웃음을 함께 나누며 라포가 형성되면, 어쩌면 내 가족들보다도 더 많이 마주하는 환자들이 때로는 더 가족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집에선 무뚝뚝하고 쑥쓰러움에 표현이 서투른 나지만 환자들에게만큼은 마치 우리 할머니, 우리 엄마아빠 혹은 동생마냥 오히려 더 친근하게 대하면서 실제 내 가족들에게 미처 못한 표현을 대신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입사 후 1년이 흐른 지금, 가끔씩 윗년차 선생님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넌 오래 못 버티고 금방 그만둘 줄 알았다고..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남아서 씩씩하게 일 잘하고 있다고 대견하다고. 사실 저도 제가 단 3개월도 못 채우고 나갈 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스스로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이 당신이 해내지 못할거라 한 일을 해내는 것이라고. 사실 처음부터 제 꿈이 간호사도 아니었고, 생각 이상의 고되고 어려운 일들로 의료인의 길에 발을 들인 것 자체가 후회도 많이 됐지만, 요즘은 후회보다 그 이상으로 제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는게 느껴지기에 훗날 간호사가 되길 참 잘했다, 내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라고 웃으며 말할 날이 기다려집니다. 또 그로 인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저의 미래가 참 기대됩니다.

후배 간호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한가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꽃은 없다고. 시련이 와도 그건 잠시뿐이니 조금만 힘내서 버텨보자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꽃은 피고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 보일거라고 말이죠.

차지혜2016-07-08
정말 힘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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