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신관 병동이 증축되고 있었다. 마치 호텔을 능가할 만큼 화려하게 변화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을 꿈꿨다.
그때만 해도 내가 그 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뎌야 할지 알지 못했다.
2022년 5월, 늦둥이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가 채 6개월이 되기도 전,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시작은 귀 통증이었다. 새벽에 잠에서 깰 정도로 귀가 아팠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목소리가 변해 쉰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오후가 되자 급기야 물조차 삼킬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성대가 마비되었다며 큰 병원 진료를 권유받았고, 손에는 진료의뢰서가 들려 있었다.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큰 병이면 어떡하지?’
아닐 거라고, 별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 날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증상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 안면마비가 시작되었다.
결국 나는 응급실로 실려 왔다. MRI 검사 후 뇌경색 의심 소견이 나왔고, 응급실에서도 중증응급구역으로 옮겨졌다.
“뇌경색이 의심됩니다.”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내 첫마디는“살 수 있나요?”그리고 두 번째 말은“아기가 아직 6개월도 안 됐어요.” 였다
병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동안 얼굴마비는 점점 심해졌다. 나중에는 눈을 내 의지대로 감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밤이 되면 온갖 생각이 밀려왔다.
‘혹시 내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내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세 아이의 이름을 차례로 떠올렸다.
첫째, 둘째, 셋째.
아이들의 이름이 기억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래, 아직 괜찮아.’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성대마비로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억지로 음식을 삼켰다. 살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그토록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던 나에게 아무도 “힘드시죠?”라고 묻지 않았다.
당시는 코로나19로 보호자의 상주가 어려웠고, 병실에서 밀려오는 두려움과 싸우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때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병동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병상에 누워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다시 저렇게 뛰어다니고 싶다.’
병원에서 보낸 2주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퇴원 후에도 끝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얼굴재활과 성대재활을 받아야 했다. 가을에 시작한 치료는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복직을 미루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약간의 후유증은 남았지만, 기적처럼 따뜻한 봄날 복직할 수 있었다. 감격이었다. 내가 다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 돌아오다니. 다시 간호사로서 병원을 뛰어다닐 수 있다니.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수간호사가 되어 다시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환자들을 만날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이렇게 묻는다.
“힘드시죠?” “많이 놀라셨죠?”
예전에는 환자에게 건네는 수많은 말 중 하나였을 이 말들이 이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던 나에게는, 그때 누군가 건네주었으면 했던 말이었다.
환자는 질병만으로 힘든 것이 아니다.
낯선 병실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앞에서, 앞으로의 삶을 알 수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혼자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안다.
그래서 환자의 표정 하나를 더 살피고, 말 한마디를 더 건네려고 한다.
‘괜찮으세요?’라는 말 대신 때로는 ‘많이 힘드시죠.’ ‘많이 놀라셨죠.’ 라고 먼저 묻는다.
내가 환자였던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은 거창한 간호기술이 아니었다. 환자의 마음을 먼저 바라보는 것. 그리고 환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간호의 시작이었다.
한때 나는 병상에 누워 병동 간호사들을 바라보며 다시 뛰어다닐 수 있는 날을 꿈꿨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그 병동에 서 있다.
이제는 단순히 뛰어다니는 간호사가 아니라, 환자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먼저 손을 내미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환자였던 시간이 나에게 남긴 작은 선물은 ‘공감’이었다.
아팠던 시간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덕분에 나는 환자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병동에서 환자 곁에 선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힘드시죠?”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환자 곁에서 작은 위안을 건넬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환자였던. 나의 경험이, 이제는 환자를 이해하는 간호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다시, 환자 곁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