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나는 섬망이 온 환자분에게 오른쪽 뺨을 발로 차였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섬망은 환자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낯선 공간과 몸에 연결된 줄들, 흐려진 의식 속에서 얼마나 두려우셨을지도 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퇴근하는 길,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만 남았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계속 간호사를 해야 할까?”
아침까지만 해도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한 할머니가 초콜릿을 들고 나를 찾아오셨다. 석 달 전 우리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셨던 할머니였다. 이동주 간호사에게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만나는 중환자실에서, 나는 그분께 특별한 일을 해드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랬다.
입원해 계시던 어느 저녁, 식사로 갈치가 나왔다. 나는 할머니가 드시기 편하도록 가시를 발라 밥 위에 올려드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살면서 남에게 생선을 발라주기만 했지,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생선을 발라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열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한쪽 다리를 절며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오신 분이었다. 몸은 지팡이에 기대어 살아오셨지만, 사람에게 기대기보다는 늘 남을 챙기는 쪽에 익숙한 삶을 살아오셨다고 했다.
그제야 석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건넸던 말도 함께였다.
“앞으로는 공주님처럼 사세요. 여기도 아프다, 저기도 아프다 하시면서 할아버지와 가족분들께 기대고, 마음껏 시키면서 사세요.”
나는 지나가듯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석 달 동안 그 말을 기억하고 계셨다.
같은 날, 나는 돌보던 환자에게 맞았고, 돌봤던 환자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갈치 가시를 발라드리는 일은 간호기록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처치 항목에도, 인계 내용에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돌봄을 받았다’는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다.
내가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그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돌봄이었다.
돌봄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환자가 힘들 때 내가 힘이 되어 드렸듯, 내가 힘들 때는 환자가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건넨 작은 마음 하나가, 서로가 가장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두렵다. 앞으로도 섬망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분을 만나게 될 것이고, 나 역시 무너지는 순간을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잊고 있던 한 끼의 기억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었듯, 내가 발라드리는 갈치 한 점과 건네는 말 한마디도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석 달 전 나는 할머니께 갈치 한 조각을 건넸고, 할머니는 그 마음을 기억해 내게 초콜릿 한 상자를 건넸다.
그 초콜릿은 그만두려던 나를 다시 간호사로 붙잡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