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에 입사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동료간호사들이 내 곁에 있었고, 많은 간호사들을 새로 만나기도 떠나보내기도 하였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나 역시 많은 고민과 흔들림의 시기가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싶은 간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항상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나는 환자를 만나는 것이 좋아.” 였다. 모든 물음의 답은 그것이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교육간호사가 되었을 때도 간호사 교육이 좋았다기 보다는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리고 환자 교육과 간호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 말고 신규간호사를 교육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있구나, 하며 교육자로서의 색다른 매력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낯선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 곳에서 나의 존재, 나의 역할, 내 존재의 의미..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자꾸만 땅을 파고 숨고싶었다. 그리고 그 끝은 무언가 해내고 싶다, 목표가 필요하다 였고, 나는 1년의 무급휴직 신청 후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돈이 엄청 많이 들거야, 박사과정을 마친다고 해도 나의 직급과 월급은 달라지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전할거야. 나의 선전포고에 남편은 응원한다 였지만, 오랜 기간 나의 간호사 생활을 지켜봐온 엄마는 이제야 좀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또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며 걱정스러운 말 뿐이었다.
그렇게 진학한 박사과정, 엄마의 말대로 정말 녹록치 않았다. 석사 졸업 후 9년 만에 진학한 박사과정은 나의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았고, 매 학기가 고비였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다 듣게 된 간호철학 수업에서 예상치 못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항상 환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은 바로 간호의 미학적 측면에 대한 것이었다. 무언가 해내고 싶고 목표가 필요했던 나는, 여전히 또다른 회의감에 젖기도 하고 내가 한 선택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곱씹기도 하지만, 우리의 간호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삶은 나에게 달콤한 사탕만 주지는 않는다. 시리고 쓰고 매운 고통도 줄테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본인의 몫인 것이다. 삶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무언가를 해내야한다. 이런 걸 나에게 왜 주냐며 쌓아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야한다.
그런 창의적인 생각과 행위로 우리의 간호는 대상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한 관심과 존중, 공감적 태도를 기반으로 정서적 지지와 안도감을 제공하는 창의적인 돌봄이 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간호의 미학적 측면은 더욱 돋보일 것이며, 우리의 간호는 아름다울 수 있다. 간호사인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할 간호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