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 500 한 병의 마음
-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어느 어머니의 사랑 -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나는 노란 비타 500을 바라보며 한 어머니를 떠올린다. 햇반과 김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고맙다며 내 손에 쥐여 주시던 음료 한 병. 그 작은 병 하나가 지금도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2021년 여름, 호스피스 병동의 수간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한 환자가 우리 병동으로 이송되어 왔다. 기록지를 확인하던 내 손길이 생년월일 앞에서 멈췄다. 나와 같은 나이였다. 또래의 친구들이 미래를 그려 갈 나이에 그는 삶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단명은 폐암 말기였다.
환자의 곁에는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늘 함께 계셨다. 며칠 뒤 후배 간호사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선생님, 저 보호자분 때문에 조금 힘들어요.”
욕창 소독을 할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상태 변화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조금 까다로운 보호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환자를 살피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병실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간이침대 끝에 쪼그리고 앉아 햇반과 김 몇 장으로 식사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식사 마저 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셨다.
“괜찮습니다. 우리 아들부터 봐주세요.”
환자를 살피고 욕창 소독을 마친 뒤 병실을 나왔다. 잠시 후 어머니가 간호사실로 찾아오셨다. 손에 들고 있던 비타 500 한 병을 내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환자를 돌보며 어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들 곁을 지키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집에서 만든 멸치볶음과 장조림, 김치를 작은 반찬통에 담아 가져갔다.
“어머니, 이것 좀 드세요. 어머니가 잘 드셔야 아드님도 잘 돌보시죠.”
어머니는 한동안 말없이 반찬통을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히셨다. 다음 날 반찬통은 깨끗이 비어 있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얼마 뒤 상담 기록을 통해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아들을 키웠고, 아들이 네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30년 넘게 아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오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아들에게 찾아온 폐암은 어머니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작은 변화에도 불안해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던 것은 까다로움이 아니었다. 평생을 바쳐 지켜온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힘들어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끝까지 설명해 드리고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가 해결할게.”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인계장을 확인하던 내 손이 멈췄다. 늘 보이던 환자의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15분 임종.’
무엇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당시 근무했던 간호사에게 마지막 상황을 물었다.
“어머니가 아드님의 차가워진 다리를 붙잡고 한참을 통곡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두 사람의 평안을 오래도록 기도했다.
환자가 떠난 지 2주쯤 지났을 때였다. 간호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였다. 두 손에는 묵직한 비타 500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
“선생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말없이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우리 아들이 죽었어요. 아직도 안 믿겨요. 나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드렸다.
간호사실에서 평소 좋아하시던 믹스커피를 대접하자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입원해 있는 동안 선생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반찬 싸다 주셨던 것도 다 기억해요. 평생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마음을 써준 게 참 오랜만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위로받고 있음을 느꼈다.
그 어머니를 통해 나는 간호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 간호는 환자의 상처와 증상을 돌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환자의 곁을 지키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보호자의 손을 잡아 주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슬픔까지 헤아리는 일이다.
지금도 무더운 여름날 비타 500을 볼 때면 그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 여름, 어머니가 건넨 비타 500 한 병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맙다는 인사였고, 아들을 지켜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으며, 내가 어떤 간호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작은 선물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 어머니와 아들의 평안을 마음속으로 빌며, 누군가의 마지막 여정에서 환자와 가족이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따뜻한 그늘 같은 간호사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