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벚꽃이, 5월엔 장미가 만발하더니 6월엔 수국이 참 아름답다.
26년간 근무한 병원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달 한달이 유난히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2000년 3월, 신경외과 중환자실 신규간호사로 병원에 첫 발을 디딘 지 어느덧 26년.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내과계중환자실에서 임상간호사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MICU 주임간호사로서 말이다.
우린 우리들을 ‘미큐’라고 불렀다(MICU간호사 애칭^^). 미큐들이 일하는 내과계중환자실은 매일 같은 업무가 반복되었지만,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호흡기내과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중환자실에서는 모두가 suction의 달인이 되었고, 가장 어려운 prone position을 해야 할 때면 다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환자 곁에 모이곤 했다. 더운 날이면 몸에 달라붙는 비닐 가운이 원망스러웠고 인공호흡기 치료로 sedation이 된 중환자들을 옮겨야 하는 날이면 우리의 몸도 천근만근, 거기다 대변 본 환자가 많은 날에는 체위 변경에만 한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피곤한 줄 모르고 5킬로짜리 헤모졸을 가뿐히 들고 달리던 우리들.. 연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한 살 더 먹는다고 억울해하면서도 설레는 마니또 선물 파티를 준비하던 우리였지.
원내 코드블루 방송이 울리면,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인공호흡기를 준비하고 빛의 속도로 입원 준비를 하며 폭풍전야 같은 긴장 속의 시간을 함께 견뎌냈다. 가장 기본 간호에 충실해야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업무들이 많은 곳, 바로 MICU였다. 인공호흡기 weaning에 성공하여 병동으로 올라가는 환자분께는 모두가 약속한 듯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가 되었고, 바빠도 섬망 사정하느라 “돌이 물에 뜨나요?” 질문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중환자실의 전사들로 성장해 있었다.
이젠 새로운 앞날을 준비하고자 임상을 떠나는 이즈음에, 사랑하는 미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다. 아들 셋 다둥이 아빠 홍곤, 손은 작지만 누구보다 빠른 손 미선, 눈물의 여왕 미영, 효리보다 예쁜 요가대장 이랑, 천사 프리셉터 국영, 셀프웨딩 새댁 초롱, 람보보다 운동 잘하는 보람, 애교쟁이 주희, 퍼펙트 총무 혜빈, 조용조용한 아현, 중환자실에 스스로 지원한 씩씩한 지영과 유정, 투덜대도 귀여운 시윤, 태국을 사랑하는 지윤, 청순가련 은영, 상큼발랄 효경, 아현이보다 더 조용한 연희, 콜라♥주스 규리, 어리지만 야무진 은수, 초밥 데이트 민지, 자라나는 새싹들 유빈, 지원, 송이, 한빛, CRRT 채나, 만능손 아영, A-line의 대가 현화~~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내 간호사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고, 또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대가족을 잘 이끌어주신 이은주 간호과장님, 미큐들과 늘 동고동락했던 박연경, 강성욱, 양서희 전담전문의 선생님, 무게중심 이병준실장님께도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큰 울타리가 되어주신 이범경 간호본부장님께도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이 크다.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환자들을 돌보며 간호사로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나를 둘러싼 모든 분이 있었기에 버티고 걸어올 수 있었던 길이었다. 여기서 함께했던 기억들은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언제나 환자 곁에서 묵묵히 중환자실 간호사의 본분을 다하는 우리 미큐들 덕분에 내가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크게 외쳐본다.
“우리 미큐들~많이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