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좀 떠봐요, 여보.”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귓가에 말을 건넵니다. 그 손길이 닿는 곳에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였던 한 환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비소세포성 폐암으로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온 환자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쇠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약 10평 남짓한 병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존재는 의료진입니다.
환자분은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네불라이저 치료 시간이 되면 조심스럽게 상체를 받쳐 치료를 도왔습니다. 산소를 사용하는 환자였기에 비강 캐뉼러가 닿는 부위에 피부 손상이 생기지 않는지 근무조마다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대답이 없더라도 현재 시행하는 치료와 그 이유를 설명하며 돌보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워도 환자분이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곁을 지키는 보호자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보호자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고마워요. 저는 점점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데 선생님들은 반복되는 일일 텐데도 늘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시네요.”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후 환자분과 보호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요양원으로 퇴원하셨습니다. 남은 시간을 두 분만의 방식으로 보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며칠 뒤, 출근 전 공부를 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습니다. 본원은 장례식장이 함께 있어 늘 그 앞을 지나곤 했습니다.
그날도 무심코 지나가던 중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까지 돌보았던 환자분의 이름이었습니다.
순간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저를 불렀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한때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 한 분이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마주치네요. 안 그래도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마지막 인사라도 함께해 주세요.”
평소 저는 ‘간호사인 나’와 ‘그냥 나’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그 선이 흐려지면 언젠가는 제 감정도 함께 소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선택한 것은 간호사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나’였습니다.
저 멀리 상복을 입은 보호자는 저를 보자마자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품 안에 들어온 작은 어깨를 느끼며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의 투병 과정에서 보호자 역시 함께 지쳐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보호자는 가족들에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너희 아버지, 할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 돌봐주시던 간호사 선생님이야. 우리 영감이랑 나는 병동 선생님들이 정말 좋았어.”
그 한마디는 지금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호흡기 병동에서 근무하며 선배 간호사들에게 배웠던 가치들이 어느새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배움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 마음이 다시 환자와 가족에게 이어지며 결국 한 생명의 마지막 여정을 따뜻하게 지켜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병동의 누군가가 가르쳐 준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렇게 이어진 돌봄이 환자와 가족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저는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그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으려던 순간, 이미 그 온기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래의 저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편안하게 잡을 수 있는 온도를 가진 간호사.
환자와 가족의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간호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내 온기가, 그의 가족들에게도 전해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작은 발연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