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Guillain-Barre Syndrom)로 입원한 할머니가 계셨다. 사지 motor grade 0, 기관절개관을 통해 BIPAP을 적용 중인 상태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어, 입모양만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이어가야 했다. 가스와 변으로 팽팽하게 부른 복부, 수시로 무른 변이 흘러나왔고 풍채 좋은 몸을 감당하기엔 기저귀 교환도 자세 변경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미안해, 고마워”
입 모양만으로 건넬 수밖에 없는 그 말들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고맙다는 말은 힘이 났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 앞에선 멈칫하게 됐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신 걸까. 혹시 내가 힘든 내색을 한 걸까. 할머니가 제일 힘들 텐데. 미안하다는 말 앞에선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날도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환자의 보호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전원 가면 남자 간병인을 쓰던가 해야지,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여기서나 간호사가 도와주지. 아이고.”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나는 들었다. 할머니도 들으셨을까. 반박 한마디 할 수 없는 지금의 처지에서 이런 말을 들으셨다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할머니의 마음에 한이 맺힐 것 같았다.
할머니의 표정에 동요는 없었다. 기저귀를 다 바꾸고 나니, 어김없이 미안하다고 하셨다. 오늘의 미안하다는 말은 더 속상했다.
“할머니, 이거 나을 수 있는 병이에요. 지금 너무 슬프고 힘들겠지만, 다 이겨낼거에요. 걸어서 병원오는거 꼭 보여주세요.”
그 뒤로 할머니는 점점 더 우울감에 빠지셨다. 하루하루 얼굴이 수척해져 갔다. 할머니를 웃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오늘은 할아버지 안 오셨네요? 할아버지 이렇게 이렇게 걸어오시던데요.”
할아버지의 늠름한 걸음걸이를 흉내 내 보였다. 할머니가 웃으셨다. 간만에 함박웃음이었다. 내가 웃음 짓게 해줄 수 있다니, 나도 행복했다.
누워서 병원 천장과 커튼만 바라보는 날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하루하루. 그 안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크고 깊은 응어리를 안고 계실까. 할머니는 지금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계실까? 말로는 다 알 수 없어,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느껴본다. 할머니의 마음을
병원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지고 하루를 버텨낸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오늘도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환자의 멍든 마음을 찾아 가만히 손을 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