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월드컵 4강 신화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2002년 여름, 나는 한양대구리병원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 서 있던 떨리는 가슴의 간호 학생이었다. 처음 참관했던 무릎 인공관절 수술, 메스가 지나간 자리마다 피어오르는 긴장감과 기계적인 마찰음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압도되었다. 마스크 너머로 땀방울을 흘리며 수술에 임하던 선배님들의 뒷모습은 내게 경외심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건국대학교병원 중앙수술실에서 그때의 나와 닮은 후배들의 눈망울을 마주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공관절 수술의 중심인 정형외과 책임 간호사다.
3년 전부터 나는 건국대학교 간호학과 학생들의 수술실 실습 교육을 세분의 선생님과 나누어 맡고 있다. 20년 전 직접 느꼈던 그 막막함을 알기에, 후배들에게 수술실은 '두려운 곳'이 아닌 '전문성과 환자의 생명이 꽃 피는 곳'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얼마 전, 20년 전 나처럼 인공관절수술을 참관하던 한 학생이 뼈와 피가 튀기는 수술 현장에 당황했는지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창백해진 학생을 보며 2002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더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도 내가 사랑하는 일터인 수술실이 실습생의 희망에서 배제가 될까 걱정이 되면서도, 이곳이 얼마나 숭고한 생명의 현장인지를 다시금 내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수술실 실습 나오는 간호 학생들의 가장 많은 실수 중 하나는 멸균 영역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오염시킨 학생에게는 엄한 훈계보다 '외과적 양심‘이라는 절대 명제를 몸소 체험하게 했다. 간호사의 실수는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고 함께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함을, 모든 간호사는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발전하는 길임을 강조해 준다.
교육 중 학생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시간은 외과적 손 씻기, 멸균, 수술기구, 봉합사로 이루어진 특성화 교육이며 그중 내가 맡고 있는 부분은 봉합사 교육이다. 흡수성과 비흡수성, 자연사와 합성사의 차이를 설명하고, 실제 수술에 사용되는 봉합사를 직접 보여준다. 단순히 규격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실 하나하나 두께와 바늘의 크기, 모양에 따라 적용되는 수술과, 단순한 수술 재료가 아닌 환자의 상처를 닫고 일상을 잇는 '희망의 매듭'임을 강조한다. 그 후 보호자 없는 수술실의 또 다른 환자의 편인, 안전을 책임질 수술실 간호사만의 전문성, 타 부서 간호사와 대비되어 나타나는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다보면 호기심 가득하던 학생들의 눈빛은 비로소 확신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긴박한 수술 업무와 교육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로 별도의 교육 시간을 보장받게 되면서 교육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 현장의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후배 양성의 가치를 믿고 지원해 주시는 수 선생님께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외과적 손 씻기, 기구 및 멸균 교육을 묵묵히 함께해 주는 동료 간호사들은 제가 이 교육을 3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다.
금요일 오후 수술실 실습의 마지막 날인 학생들의 표정이 밝다.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들이 오가던 중 "선생님, 덕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수술실 간호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을 때면 인사치레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것은 단순히 봉합사의 종류가 아니라, 환자의 상처를 정성껏 꿰매듯 후배들의 꿈을 이어주는 마음이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2002년의 떨리던 학생 간호사가 이제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 서 있다. 건국대학교병원 수술실은 앞으로도 차가운 메스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미래의 간호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단단한 매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