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전담 간호사로 일한 지 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병동에서 환자들과 직접 부딪치며 일하던 때와는 달리, 서류 업무가 많아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개인적으로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직업적 권태기를 겪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분들이 외래와 병동을 오가지만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자분들은 반복되는 치료 과정 속에서 서로 아는 사이가 되기 마련이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할 때 전담 간호사를 통해 항암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시작하고 항암 치료하는 중간중간 컨디션은 어떤지,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하게 되니 얼굴과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도 많은 환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항암 치료를 받는 분들은 일정 주기로 반응 평가를 하게 되며 반응 평가에서 PD(progressive disease) 소견을 받게 되면 다른 항암제로 바꿔야 한다.
그날도 한 환자분이 반응 평가에서 PD 소견을 받아 새로운 항암제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나를 찾으셨다.
문제는 급여가 가능한 항암제 단계를 넘어선 이후였다.
선택지는 비급여 항암치료뿐이었고, 그 비용은 한 달에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이 넘기도 했다.
그래서 협회나 제약회사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 과에서는 그러한 지원 프로그램을 전담 간호사가 환자분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분 같은 경우에도 급여가 가능한 항암제는 다 사용을 한 상태였고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내야하는 비급여 항암제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의료급여 환자였다.
다행히 그 당시 이 항암제는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어, 의료급여 환자분들의 경우 먼저 치료비를 결제한 후 지원 신청을 하면 100% 환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항상 환자분들에게 비싼 비급여 비용을 설명할 때마다 스스로도 약간 부담을 느끼고는 하는데 이 경우 100% 환급이 되니 환자분에게 약간의 부담을 덜고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환자분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선생님 저는 몇만 원 내는 비용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에요. 한 달 생활 비용도 나라에서 나오는 삼십만 원으로 겨우 먹고살고 있어요. 100% 환급이 된다고는 하지만 몇백만 원을 결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항상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고 저는 이제 치료는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게요."
사실 이런 환자분들은 종종 있었다.
이제 힘이 드니 치료를 포기하고 한적한 시골 동네로 가서 요양하겠다는 분들은 신규 때부터 많이 봐왔고 그들의 선택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치료를 포기하는 이유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환자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100% 환급이 된다고는 하지만 먼저 결제를 해야 하니... 진심으로 대신 결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병원과 지원 협회에서 이해를 해준다면, 병원에서는 외상으로 결제를 잡고 나중에 협회에서 병원으로 환급을 해주는 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능할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원무팀과 협회에 연락해서 환자분의 사정과 내 생각을 말하고 협조를 읍소하였다.
그 사이 여러 가지 많은 일들과 많은 서류 업무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양쪽 모두 사정을 이해해 주고 협조해 주셔서 환자분은 별도의 선결제 없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억지일 수도 있었지만 모두 협조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환자분도 너무 고마워하였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면 좋았겠지만, 그 항암제 역시 오랜 시간 사용하지는 못했다.
다시 PD 소견이 나왔고, 더 이상 항암 치료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호스피스 치료를 받게 되었다.
호스피스로 가기 전 마지막 외래 진료 날,
환자분께서 나를 찾으셨다.
"선생님은 저에게 생명을 한 번 더 주신 분이세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몇 달을 더 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그분의 그 감사의 인사가 잊히지 않는다.
인사받는 당시는 슬펐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고민해왔던 직업적 정체성과 권태기도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때는 환자 곁에서 직접 부딪히며 일하던 순간들만이 ‘간호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정 절차일 수 있는 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삶을 조금 더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금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환자분이 건넸던 “생명을 한 번 더 주셨다”라는 말은, 나에게는 오히려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내가 어떤 형태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어떤 방식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환자를 위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