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IMF 시절, 신입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2026년, 어느덧 긴 시간을 임상과 함께 걸어온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을 시작으로 투석실, 내과와 외과 병동을 거쳐 지금은 여성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는 한 분이 있습니다.
지난 2월, 고운 모습으로 하늘로 떠나신 문OO님께 늦은 안부를 전합니다.
“꽃처럼 짙은 향기를 남겨주신 문OO님, 안녕히 계신가요.?”
처음 만난 것은 2025년 1월이었습니다.
자궁암으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반복하며 많이 지쳐 있던 분이었습니다.
깡마른 몸에 복수로 인해 유난히 부풀어 오른 배, 창백한 피부.
하지만 그와 달리,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고 단단했습니다.
어느새 병동의 장기 환자가 된 그녀는 남편과 함께 5인실 한편에서 조용히 시간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말수는 적고, 고통과 피로 속에 점점 지쳐가는 모습.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자꾸 쓰이는 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담당 간호사 김민정입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 먹고 싶은 게 없어. 다 귀찮아.”
“그래도 조금은 드셔야지요. 입맛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하시고요. 힘난다, 힘난다 하면서요.”
짧은 대화로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국문과를 나왔어.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 한 권내는 게 꿈이었지.
그런데 결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딸 키우고…
이제야 나를 위해 살아보려 했는데 이렇게 아프게 됐네.
참, 인생이 그래… 민정씨는 어때?”
그 질문에 저는 잠시 웃으며 답했습니다.
“저도 결혼 전에는 해외에서 미국 간호사를 시작으로 세계의 간호를 배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면허 합격 소식 받던 날, 프러포즈를 받고…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간호사가 되었네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지 못한 꿈’을 조용히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기운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OO님, 뭐라도 드셔야 힘이 나요.
그리고… 남편분과 따님께 편지 한번 써보시는 건 어떠세요?
말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글로는 더 잘 전해지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럴까…먹고 힘내자 오늘은 도넛이 먹고 싶어서 부탁했어. 내일은 햄버거도 먹어보려고.
민정 씨는… 씩씩해서 좋아.”
그날 이후, 그녀는 병상 위에 편지지를 펼쳐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지만,
그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삶을 정리하는 따뜻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응원했습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보네… 너무 좋아.”
남편분은 그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말없이 곁을 지키며 아내가 원하는 것을 묵묵히 해내던 분.
그 사랑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민정 씨, 왔어?”
늘 제 이름을 불러주시던 OO님.
제 긴 간호사 생활 동안, 환자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받은 순간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저에게 건네주신 그 편지는,
제가 다시 간호사로서 걸어갈 힘을 되찾게 해준 큰 선물이었습니다.
“주말 지나고 만나요.”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OO님, 감사합니다.
그곳에서는 꼭 책을 쓰시고,
멋진 작가로 살아가고 계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저는 그 꿈을 조용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여전히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은 ‘문OO’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당신이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