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청년이 있다. 새카만 눈썹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사이였다. 어느새 그의 생일을 외우게 되었고, 그저 나보다 두 살 많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무균실에 들어가며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골수검사를 위해 다시 병동에 왔다. 처치실에서 지혈대를 묶자 그는 특유의 눈썹을 모으며 말했다.
“선생님, 주사 잘 놔요? 혈관 없는데.”
다행히 처치는 금세 끝났다. 긴장이 풀렸는지 그는 밖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선생님은 전에도 있더니 아직 여기 있네요? 나이 물어봐도 돼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여자 나이 그렇게 물어보면 안 돼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허풍을 섞어 말했다.
“내가 환자분보다 훨씬 많아요. 남편도 있고 아기도 둘이나 있어요.”
그 이후로 그는 병동을 오가며 계속 내 나이를 의심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고, 끝내 내가 누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료 간호사들도 웃으며 넘겼고, 그의 오해는 점점 커졌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검사 때문에 짜증을 냈다가도, 결국 스스로 휠체어에 앉으며 말했다.
“갈게요. 엑스레이. 나 좋아지라고 찍는 건데 괜히 짜증 냈어요. 미안해요.”
그의 눈썹 끝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검사 수치는 오르락 내리락했고, 그때마다 결과를 설명하는 내 입안에는 바늘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 이야기와 사소한 질문들을 꺼냈다. 그에게는 누나가 여러 명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서 친누나를 투영하고, 나는 그에게 내 남동생을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그렇게라도 병원 생활이 조금 덜 외롭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퇴원하던 날, 나는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끝내 내 진짜 나이를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의 작은 오해가 그에게 위안이 되었다면, 어쩌면 그것도 간호의 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 손을 흔드는 그 청년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