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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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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마였다.

나는 14년 차 간호사다.

20-30대를 부천성모병원에서 보내면서 많은 부서를 겪었다.

외래, 신생아실, 신생아중환자실, 분만실을 거쳐 준중환자실 병동, 내과 병동, 그리고 현재 신경외과 병동에서 근무 중이다. 많은 부서를 겪었고,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제일 남는 기억은 신규 시절부터 6년 차까지 지냈던 신생아실, 신생아중환자실, 분만실이다.

 

이곳은 축복받으며 태어나 사랑 가득 받으며 퇴원하는 아기가 있는 반면, 태어남과 동시에 버려지기도, 세상에 나와 눈 뜨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여행을 가기도 하는 곳이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응급상황과 함께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은  데이 근무였다.

언제나 그렇듯 전화벨이 수시로 울리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이었다.

산모인데 배가 아파서 왔다고, 병원 진료 기록이 없어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상황인데 아기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분만장으로 뛰어갔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만대를 차리고 있는데 산모가 올라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들리는 소리

"아기가 나온 것 같아요..."

놀람과 동시에 설마 하며 산모의 바지를 허겁지겁 벗기니 푸른빛의 아기가 눈을 감고 몸을 둥글게 만 상태로 있었다.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기가 몇 주인지도, 출산한 지 몇 분이나 흐른 건지 알 수 없었기에 손이 덜덜 떨렸지만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코드컷부터!!'

옆에는 산부인과 의사와, 소아과 의사가 도착해 있었다.

급하게 글러브부터 끼고코드 컷을 한 뒤 워머기에 아기를 올렸다.

아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어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무시하고, 소아과 의사와 함께 아기의 상태를 살피고 응급처치를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기의 피부가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 살았다'

깨달은 순간 안도감이 물밀듯 들어왔다.

아기는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며칠 뒤 건강하게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가야 살아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자라"

퇴원하는 아기를 보며 괜스레 뿌듯하고, 웃으며 가족의 품으로 보내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감, 두려움에서 아기가 날 구해줬다.

 

한 인큐베이터에는 30주 초반에 미숙아로 태어난  하얗고 이쁜 여자아기가 있었다.

2kg가 채 안 됐지만 미숙아치고는 호흡도 괜찮고 입으로도 수유를 할 수 있는 정도여서, 잘 먹고 몸무게 늘려서 퇴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아기였다.

아기가 너무 이뻤다.

내가 낳은 아기는 아니지만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우리는 엄마가 되어 아기에게 사랑을 주며 소중히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배가 불러왔다.

배에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고 color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토를 하기도 하고, 산소포화도 유지가 안되기 시작했다. 입으로 수유를 중단하고, L-tube를 넣고, 인공호흡기까지 달았다. 산소요구도가 점점 늘어갔다.

신생아 괴사성 장염(NEC, Necrotizing Enterocolitis)이였다.

아기를 향한 걱정, 슬픔, 속상함, 안타까움 등의 감정들이 몰아쳤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새 없이 쏟아지는 처방을 받고, 처치를 했다.

수술이 필요로 했지만 수술실까지 이동할 수 있는, 아기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컨디션이 아니었고, 나는 기적을 바랄 뿐이었다.

'아가야 힘내'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던 아기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아기를 보는 부모의 눈물과 울음소리를 듣고, 볼 자신이 없었다.

자리를 피해 울지 않으려고 울음을 참았다. 그땐 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기를 잃은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금 생각해도 떠오르는 말이 없지만, 손이라도 잡아 드릴 걸, 등이라도 토닥여 드릴 걸, 같이 슬픔을 나눌걸...

아기한테 마음속으로 눈물을 참느라 겨우 '아기야 잘 가,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해' 하며 후다닥 자리를 피했던 게 후회로 남아있다.

 

안아달라고 우는 아기들에게 엄마가 되어 손목 아프도록 안아줘도 보고,

3개월을 넘게 함께 지냈던 아기는 포대기로 업어가며 일을 하기도 했고,

병원에서 아기의 100일 잔치를 하며 축하도 해주고,

똥 기저귀 갈아가며 사랑으로 키웠다.

 

아기를 낳고, 버리고 간 부모에 분노하기도,

별이 된 아기의 긴 여행에 눈물을 훔치며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건강해져 퇴원하는 아기를 보고 다 같이 기뻐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 아기들에게 엄마였다.

엄마였기에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었다.

 

현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병동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아기 천사들과의 그때의 기억과 추억들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그것이 뿌리가 되어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 성장, 발전, 노력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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