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전담간호사로 근무하던 때이다. 아직은 이른 봄의 어느 날이었다.
누가 봐도 중환자실 내에서 희망과는 거리가 먼 듯해 보이는 환자가 보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환자는 암 진단 후 수술을 받고 하루 이틀 내로 퇴원을 계획하고 있을 만큼 잘 회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면서 경련을 일으켰고 의식을 잃으며 중환자실로 전실한 상태였다.
100kg이 훨씬 넘을 듯한 체격에 누워 있는 침대가 작아 보이기까지 한 젊은 환자는 여러 개의 의료장비와 전깃줄같이 늘어선 수액줄에 생명을 조금씩 수혈받듯이 오늘도 그렇게 버텨내고 있었다.
에크모까지 돌리고 있었지만 상태에는 변화가 없었고, 이제는 치료라기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고 그리고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일까 봐 두렵고 답답했을 마음은 의료진과 보호자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호자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회진을 기다렸고 담당 교수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희망을 찾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어느 날은 담당 교수가 보호자에게 조금의 변화라도 있으면 연락을 드릴 테니 병원에 오시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권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의료진 이전에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스러웠다.
나는 보호자에게 장기전이 될 수 있으니 입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응급실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오시라고 돌려보냈다. 멀쩡히 걸어서 들어온 아들이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있다면, 원망이든 미움이든 다 쏟아낼 법도 한데 보호자들은 싫은 소리 한마디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짠해 보여서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보호자가 버틸 힘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고 자식도 지킬 수 있어요"라고 하니 그제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셨다.
한 달쯤 지났을까. 모두의 바람이 환자에게 들렸을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드라마에서처럼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눈을 뜨고 묻는 말에 눈 깜박임으로 대답하였다.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전하던 그 떨림의 순간, 가슴 벅차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환자는 빠른 속도로 좋아졌고 일반병실로 전실하면서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환자가 처음 죽을 먹던 날은 담당 교수가 어미 새처럼 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 주면서 흐뭇해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간호간병서비스병동이어서 보호자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아직은 흔들리는 손에 숟가락을 쥐고 본인이 먹기에는 힘에 부치기도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 상주를 지시하였고 보호자는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들의 입에 죽을 먹여주면서 얼마나 우시던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의 마음,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적이란 말은 희미하지만 그래도 현실 속에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이뤄지기에 존재하는 단어라고. 그렇기에 희박하지만 의료진, 환자, 보호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였기에 그에 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잠시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나 자신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은 누군가가 조금 더 평안하기를.
오늘은 누군가가 조금 덜 아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