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첫 출근 응급실의 문을 열던 날, 낯설고 두렵기도 했지만, 가슴 한켠엔 설렘이 더 컸다
응급실은 언제나 긴박하고 바쁘게 돌아갔지만, 그 속에는 묵묵히 서로를 의지하는 선후배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움직이던 그 시절, 나는 함께 버텨주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2014년, 더 깊이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응급 전문 간호대학원에 진학했고, 2016년, 만삭의 몸으로 응급전문간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장을 향하던 그날의 무거운 발걸음과,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휴직 후 복귀하며 투석실로 이동하게 되었지만,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짧은 기간만 머무르고 다시 휴직에 들어갔다. 복귀 후 다시 응급실로 돌아올 때는 두려움이 앞섰다.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던 그때,
환자들을 보는 순간 응급실은 여전히 나의 자리였고, 그곳의 공기와 동료들의 온기가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들었다.
셋째 임신과 출산 후에는 내과 가7병동으로 로테이션되었다.
응급실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급박함 대신 환자들의 하루를 함께하는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간호’가 단지 치료의 손길이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임을 깨달았다.
환자들이 “선생님, 친절해서 좋아요.”라고 말해줄 때나, 보호자의 “감사합니다.” 라는 한마디가 내 마음 깊숙이 따뜻하게 스며들었고, 그 말 한마디로 인하여 내일 다시 출근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최근 8개월간 건강증진팀 일반검진실에서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질병이 아닌 ‘건강’을 지키는 일, 환자가 아닌 ‘사람’을 돌보는 간호 속에서 또 다른 보람을 느꼈다. 검진 중 조기에 질환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과 대화 속에서 나는 간호가 곧 ‘사람을 배우는 일’임을 다시 느꼈다.
건강증진팀의 짧은 시간은 나에게 환자만 돌봤다면 느껴볼 수 없었던 일이라 평생의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가7병동에 있다.
17년 차 간호사이지만 여전히 매일이 새롭다.
낯선 환자를 만나고, 새로운 상황을 배우며,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지만 나는 늘 마음을 다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너무 바빠 밥도 못 챙겨 먹고, 몸이 힘든 날에도, 환자의 미소 속에서 다시 다짐한다. “그래,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지.”라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배운다.
환자의 눈빛에서, 보호자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리고 나 자신을 믿는 용기에서.
오늘도 나는 씩씩하게, 따뜻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환자 곁에 선다.
1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간호사의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부천성모병원에서 내일의 나를 그리며, 5년 뒤, 10년 뒤 내 모습을 떠 올리며, 오늘도 그 길 위를 천천히, 그리고 굳세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