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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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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미안했어요… 그리고,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대단하다, 힘들지 않냐는 말입니다.

그럴 때면 저는 늘 웃으며 괜찮아요, 익숙해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익숙해진다는 것과 힘들지 않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은 늘 긴장감이 맴돕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저희 간호사들은

무너지는 마음을 꼭 붙잡은 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 중환자실에 한 여성 환자분이 뇌수술 후 입원하셨습니다.

수술을 받은 직후였고, 초기 상태는 불안정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환자분의 mentalconfusion한 상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점차 혼란이 심해지면서 헛소리를 하고,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팔다리를 휘두르며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마주해 왔지만,

그날은 유독 감정이 벅찼습니다.

환자분의 말과 행동은 반복적으로 제 감정을 소모시켰고,

마음 한켠에 점점 짜증과 지침이 쌓여만 갔습니다.

 

나는 도와주려는 건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이해는 되지만, 정말 지친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환자분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언니, 왜 아직 퇴근 안 해?”

밥 같이 먹자~ 나 혼자 먹기 싫어.”

 

저를 언니라 부르는 이 환자에게

언니 아니에요.”

같이 못 먹어요.”

아직 퇴근 시간 아니에요.”

쌀쌀맞게 툭툭 대답하면,

 

언니, 내가 아는 사람이랑 비슷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들이 귀엽고도 애틋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그런 말조차 귀찮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말 하나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저 매뉴얼대로, 무표정한 얼굴로, 간호 업무만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환자분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고,

무사히 병동으로 이실하였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다시 또 다른 환자의 곁으로 향했고,

그 환자분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ICU 앞에서 낯익은 얼굴이 저를 불렀습니다.

 

안경을 끼고 휠체어를 탄,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 여성 환자분이

가족들과 함께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멈춰 섰습니다.

처음엔 환자분이 맞나 싶었을 정도로 너무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간호사분이 중환자실에서 너무 잘해줬어요.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상하게 이 간호사분은 기억이 나.

너무 감사해서 꼭 인사드리고,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후회,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꽉 막히는 듯했습니다.

 

나는 좋은 간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날들 속에서 나는 따뜻한 말을 해주지 못했고,

그녀의 두려움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의무감에 버틴 하루들이었는데,

그녀는 그 시간을 고마움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마음속에 되뇌었습니다.

 

그땐 내가 너한테 미안했어요.

그리고기억해줘서 고마워요.”

 

간호사라는 직업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렇게

나의 진심을 기억해주는 환자를 만나면,

그 모든 힘겨움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제가 다시 간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하루를 살아가는 데

무척이나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오늘도 중환자실에서 일합니다.

어쩌면 또 한 명의 환자가 혼란 속에서 제게 버겁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회복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저는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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