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4년의 학과 과정을 통한 지식을 습득하고 환자에게 전인 간호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며 입사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간호현장이란 응급상황의 연속이고 어느 순간 환자를 돌보는 나의 태도는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이 아닌 할당된 간호 업무를 형식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8년에 중환자실에 입사를 했고 현재에도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신규 간호사였던 제가 발을 디뎠던 중환자실의 첫 느낌은 낯설고 차갑고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능숙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선배 간호사들이 멋있어 보였고 부러웠을 뿐 다른 것은 크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 해가 지날수록 눈과 귀가 뜨이게 되고 업무가 또한 능숙해졌으며 환자, 보호자를 응대하는 태도도 제법 노련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가 다니는 병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CMC의 영성과 병원의 비전에 대해 한 번 더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어떠한 영적 간호를 받고 있고 이들은 어떤 신앙의 힘으로 질병을 이겨내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되돌아보니 환자들은 입원과 동시에 크고 작은 보살핌을 이미 받고 있구나 느껴졌습니다. 병동 간호사들은 삼교대 근무를 하면서 재원 한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각 근무 번 간호사는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부서 UM 님과 함께 ‘예수님의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이야기’의 한 페이지를 함께 낭독하며 내가 오늘 간호현장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보살필지 글귀를 통해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전, 오후 시간대별로 찬송과 수녀님의 성경 구절 말씀은 의료진에게 평온하고 숭고한 마음을 갖게 해주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그 순간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이 유발되며 치유의 힘을 믿게 됩니다. 또한 기도를 위해 방문한 수녀님은 환자들의 이야기에 경청을 하고 공감해 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십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신앙은 믿음과 영적 통찰을 통해 환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제공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과 긍정적인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약 2년 전에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40대의 젊은 여성이 뇌혈관질환으로 수술 후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수술 후 의식이 회복되지 않아 혼수상태로 병상 생활을 보내게 되었고 환자에게는 어린 두 자녀와 남편이 있었는데 그들은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길 바라며 중환자실 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고 저도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였기에 더 공감이 되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길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수일의 시간이 흐른 뒤 환자의 심박동 수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고 혈압 또한 저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역할은 조금이라도 빨리 보호자의 얼굴을 보게 해주는 것이었고 임종의 마지막에 네 식구가 함께 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모두의 기도와 염원이 환자가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간호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지식이 풍부하고 신체적인 간호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간호사의 가장 큰 역량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입사 이후 환자 간호를 하며 축적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 등과 영적인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작용하는 다채로운 존재이고 간호사는 이를 고려하여 환자의 질병이라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의지를 상실하거나 죽음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사랑과 용서, 관심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도와주며 환자가 자신에 대해 더 깨닫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며 희망을 실어 넣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현장에서 영적 간호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 환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요구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간호사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느꼈습니다.
영적 간호를 통해 환자 스스로가 존재만으로도 존귀하고 가치가 있음을 느끼도록 제 스스로 앞장서고 후배 간호사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