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텨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까.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또 버텨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출근이 괜찮아질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명대사 각색』
병원 입사 후 여섯 번째 봄을 앞둔 2월 중순, 대학원 입학 준비로 정신없던 나에게 예기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2주 후에 있을 인사이동 소식이었다. 이곳 첫 발령지에서 각 계절이 지나온 소리와 향기, 형형색색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풍경으로 삼은 이후 나의 첫 전보는 충격적이었다. ‘6년간의 쉴 틈 없는 경력 속에서 간호사로서 부족함을 느껴 성장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그 시작과 동시에 누군가를 가르치고 멘토로서 존재하는 교육간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현장 교육간호사가 되었다.
낯선 간호국 사무실에 앉으니 나의 올챙이 적 시절 그때의 교육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령 후 첫 입사 교육 날, 걱정하지 말라 소리치며 자신 있게 나왔던 출근길의 끝엔 한없이 작아진 나를 인자하게 환영해 주시던 교육간호사 선생님이 계셨다.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나에게 교육간호사 선생님은 깊은 바다에 빠진 나를 비추어준 등대 같은 존재이다.
설레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오묘하고 두근거리는 시작을 동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넘치도록 감사하고 행복했다. 현장 교육간호사로서 신규 간호사의 입사 첫날, 강당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했다.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1년간 고군분투하며 성장일기를 함께 써나갈 나의 첫 신규간호사들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 귀 기울이고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규들의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1년 후에는 어엿한 간호사로 성장하여 제 몫을 해내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는 나이팅게일의 후예가 되어 있을 생각에 마음이 기쁘다 못해 벅찼다. 마치 양육자가 되어 무럭무럭 자라는 한 편의 고귀한 일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묵묵히 믿고 지켜보다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 없이 손을 내어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어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주는 그런 양육자 말이다.
현장 교육간호사로 분주한 봄을 지내고 여름을 맞이했다. 지금도 나는 더 나은 양육자가 되기 위해 신규간호사와 함께 오늘을 버틴다. 어쩌면 성장을 필요로 했던 나에게 누군가를 성장시키며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자양분을 얻는 귀중한 기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이’의 가치를 실현하며 하나의 언덕에서 함께 자라는 두 그루의 나무가 되어 커다란 하나의 그늘을 만들고 싶다. 그 그늘은 누군가에게 쉴 곳이 되고 행복과 평안함을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더 이상 카트에 물품을 몽땅 싣고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6년 차 간호사는 온데간데없지만, 강단에 서서 교육하는 당당한 교육간호사인 나의 성장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