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3일 된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인큐베이터에 입실하였다. 엄마의 뱃속에서 36주 동안 자라난 아기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게 태어나면서 세상과의 만남을 힘들게 시작하고 있었고 폐가 미처 성숙되지 못해서 숨쉬기조차 힘들어했던 아기들은 축 늘어진 상태로 들숨, 날숨 한번 한 번이 너무 힘들었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긴박한 상황이었고 우리는 아기의 생명을 지키고 울 힘조차 없이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아기를 도와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였다. 호흡을 도와주기 위한 기관 삽관 튜브와 수액 및 약품 투여를 위한 정맥혈관,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위관과 기흉 치료를 위한 흉관, 아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개의 모니터까지 작은 몸 어디에도 빈 공간이라고는 없을 정도로 빼곡히 치료 기구들이 달리고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안쓰러움이고 가여움이었다.
성인의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가늘고 작은 다리는 조그만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허우적거렸고 이런 움직임은 아기에게 제법 클법한 진동으로 몸통에 흔들림을 주었다. 외부의 모든 자극이 아기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될 수 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손 소독 후에 재빠르게 손을 비벼서 따뜻하게 하여 인큐베이터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작은 자극에도 놀라는 아기를 배려하기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하여 마음의 온기를 전해주었고 혼자 아파하지 않도록 천천히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아기에게도 닿은 것일까?” 통증으로 아파하던 아기는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모니터의 숫자들이 정상 범위를 유지하면서 알람 소리도 줄어들었고 아기들의 호흡수는 점차 눈으로 숫자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흉관과 기관 삽관 튜브를 빼고는 혼자서도 힘차게 숨을 쉬었고 위관으로 공급하는 분유로는 배가 차지 않았던지 배가 고프다고 보채기까지 했다. 울지도 못할 정도로 축 늘어져 있던 아기들이 가장 기본적인 의사 표현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분유량을 늘려가다가 드디어 위관을 제거하였고 젖병을 힘차게 빠는 아기들을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대견하고 기뻤다. “내가 이렇게 벅찬데, 이 모습을 보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애타고 마음 졸이던 부모님이 오늘만이라도 조금은 편안하기를 바라본다.
아기들은 점차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조그만 손으로 내 검지를 꼭 잡아주던 그 순간에는 마음이 뭉클하고 뜨거워졌다. 아기들은 하루가 지나면, 하루 만큼씩 자라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기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했다. 우리는 업무 시작 전 기도와 함께 아기들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아기들에 대한 우리의 온 마음을 담아서 기도한다.
간호 현장에서 저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 닮은 치유의 동반자가 되게 하소서. “함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마태 18,19-20)
나는 오늘도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들을 바라보면서 간호 현장에서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오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간호사로서의 그 첫 마음을 잃지 않고 가슴 뛰는 하루를 살도록 기도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