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색깔은 하나인 것 같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와 구름이 드리워진 바다의 색깔은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바다를 보고 있더라도 불어오는 바람도 다르게 느껴진다. 각자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간호사는 같은 순간이라도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선택을 좌우하는 간호사의 어떤 느낌, 그건 바로 ‘촉’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외과계 병동에서 5년 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보호자 없이 입원한 환자들의 곁을 지킨다. 환자들은 나를 온전히 믿고 의지한다. 갑상선 절제 수술을 마치고 병동으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환자를 담당한 날이었다. 수술 후 처음 화장실을 가는 환자의 모습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환자는 어지러움을 제외하곤 괜찮다고 하였기에, 화장실까지 보행 보조를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혹시 힘들거나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콜벨을 누르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하고 왔다.
하지만 의자에 앉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날 다시 화장실로 이끌었고, 어지러움에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았다. 곧바로 활력징후를 포함한 환자의 다른 증상을 사정하였고, 70mmHg 대의 수축기 혈압과 손 저림을 호소하여 수술 후 혈액검사를 확인하였고 낮은 혈중 내 칼슘 수치를 발견하였다. 주치의에게 환자 상태를 알린 뒤 처방 난 약물 투약을 위해 서두르는 순간 환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고 화장실로 오셨어요? 저는 부를 힘도 없었어요. 감사해요” 그날 어떠한 마음이 날 다시 화장실로 이끌었는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빠른 환자 상태 확인과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음에 감사했다.
병동에서는 수술 환자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특별한 부작용 없이 13번째 항암을 위해 입원한 호탕한 성격을 가진 환자의 입원을 맡았던 날이다. 입원 수속 후 항암치료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항암제 중 옥살리틴이 막 종료된 후 기존의 모습과는 확연히 비교되게 지쳐있고 기력이 없는 듯한 환자의 모습을 보았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80mmHg 대의 혈압이 측정되었고, 곧바로 담당의에게 연락하였고 담당의는 환자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항암치료를 멈추고 Plasma solution 수액만 단독으로 주입한 뒤 항암제 부작용이 잦아드는지 확인하자고 하였다. 환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항암치료를 이어 나간 덕분에 다음날 본래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은 상태로 나와 다시 인사할 수 있었다. 지난 항암까지의 상태를 과신한 채 환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미처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매일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우리는 이를 통해 성장한다. 매일의 경험이 쌓여서 책에서는 배운 적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능력이 쌓인다. 5가지의 감각 그 이외의 감각을 육감이라고 하는 데서 엿볼 수 있듯 육감은 예리한 지각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한다고들 하지만 기계가 간호사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민감한 촉 발달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단히 고민해 보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단지 환자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최선이며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의 편견을 의심하고 확인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간을 켜켜이 쌓아서 만든 나의 소중한 간호는 차별화된 경험을 만들고 이는 또다시 나의 간호사 생활을 위한 원동력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임상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순환의 고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