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한 성격인 줄 알았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예민한 성격이라 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방어기제로 무의식적으로 남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환자에게 누구보다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간호사였던 내가 청색증이 와서 환자가 입술 퍼렇게 된 것도 몰랐을 정도였다. (물론 신규 트레이닝 중이긴 했지만......) 지금은 연차가 쌓이면서 환자의 간호 문제뿐 아니라 더 넓은 방향으로 눈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도 아주 특이한 이름이 아닌 이상 9년 차가 되어도 환자 이름이 잘 외워 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자꾸 기억에 남아 내 마음을 한 번씩 콕콕 아프게 하는 환자가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병동은 백혈병 환자들이 항암치료하러 오는 무균 병동이라 폐쇄되어 있어 환자들이 가족들과 면회도 하지 못하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 오로지 혼자서 항암치료의 모든 힘듦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항암 부작용으로 오는 신체적 어려움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워한다. 여지없이 업무를 하던 어느 날, 어떤 한 여자환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간호사 일을 시작 한지 몇 년 되지 않았을 시절엔 ‘다 큰 성인이 왜 매일 울고만 있을까, 한 번씩 울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치료에 전념해야지’라고 다소 냉소적으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여자환자는 나에게 있어 이전에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라는 것을 가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여자환자를 담당했을 적엔 내가 아이를 낳고 한창 아이의 재롱을 보며 고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담당했던 그 여자환자는 항암 부작용으로 다른 합병증이 오면서 재원 기간이 길어졌다. 환자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자기를 잊어버리면 어떡하냐,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병원에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라며 울었다. 그 순간 환자와 같은 엄마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저 마음은 정말 부모가 되지 않는 이상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환자에게 측은지심이 들고,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간호사로서, 그리고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들을 해주며 격려해 주었고, 그 환자는 한참을 내 손을 잡고 울고 난 뒤 진정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항암치료로 몸도 마음도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보면 ‘저 사람도 누군가의 부모, 예쁜 아들 또는 딸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환자들의 힘듦에 이전보다 조금 더 진심으로 공감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바쁜 업무에 치여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란 것은 나에게 멀게만 느껴졌는데, 내가 너무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9년 차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환자에게 측은지심이 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핑계를 대자면 너무 바쁜 간호사의 업무랄까. 아무튼 업무와 환자에 치여 회의감이 드는 후배 간호사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간호사 일 말고도 많은 경험들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되는 경험을 한 내가 환자에게 측은지심이 생겨 환자에 대한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처럼, 후배 간호사들의 다양한 경험이 환자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고, 본인 자신을 한층 더 좋은 간호사로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