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이 좋아서 선택한 어린이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지 벌써 19년이 조금 지나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면 보람을 느끼지 않아?”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3교대와 중환자실에서의 고된 업무,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부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들어... 그런 것도 느끼지 못 할 만큼.” 이라고 답했던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외래로 부서이동 후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10년 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아기의 엄마, 진료실에서 마주쳤던 환자와 보호자들... 마스크를 하고 지나가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그 분들은 어떻게 날 기억하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없이 외래진료 지원을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한 보호자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선생님~바쁘시죠?”
나는 진료의 순서를 묻는 보호자이겠거니 하고 돌아보았는데, 그 분은 얼마 전 만성신부전 딸에게 신장이식을 해주신 엄마였다.
신장이식을 하게 되어 더 이상 우리 외래예약은 없다고 말씀드리던 마지막 진료일에 진료실 밖에서 그 보호자분과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며
“잘 될 거예요! 어머니 그동안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무조건 잘 될거라 믿어요. 꼭 건강히 다음에 봬요!” 했었는데...이식 후 타과 진료를 보러 온 김에 나를 보러 들르셨다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 속에서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교수님은 다학제 진료 때 보는데 간호사님은 못 보니까 뵈러 왔어요.” 하시는 것이다.
나를 찾아주셔서, 나를 기억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외래진료를 기다리면서 오랜 시간동안 나를 지켜보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내가 혹여나 차갑게 보이지는 않았을런지, 걱정과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간호사 힘들지?"라고 묻는다면,
나는 “간호사라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라. 그래서 좋은 것 같아.”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앞으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