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15년차 간호사입니다.
올해 설 명절이 며칠 지나고서야 제주도에 있는 친구가 명절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아무렇지 않게 명절 안부를 건네고 끊으려는 순간 친구의 언니가 제주도에 사는데 갑자기 제주도 산부인과에서 전치태반으로 보이니 대학병원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줬단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형부 직장이 서울시 광진구 소재라서 건국대학교병원으로 간다고 했는데 혹시 수술 스케줄 올라온 게 없는지 물었다. 나는 근무 중이었고 마침 수술실 산부인과방 마취회복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을 때라 산부인과 전공의선생님에게도 물어봤지만 임신 30주라서 당장은 수술실 들어오진 않고 태아 모니터링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단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고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태아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급하게 응급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나도 세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지만 늘 아는 곳, 익숙한 곳이라 할지라도 수술대에 내가 직접 환자로 눕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를 출산 후 제왕절개를 위해 수술실에 입실하는 산모들보면 어느 순간부터 솔직히 남일 같지 않고 손 한번 잡아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알기 때문이다. 잠깐이지만 그 손길이 많은 위로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 언니 제왕절개 환자가 수술실 접수에서 대기 중이다. 갑작스런 진통과 태아 상태가 나빠져 이미 몸은 똑바로가 아닌 옆으로 누워 침대 난간을 잡고 수술실로 내려왔다. 수술실에 대한 경험이 없는 환자분(친구 언니분)에게 간단하게 수술실의 상황과 우리가 옆에 있을 거라는 안심을 주고 싶었지만 그 엄마의 마음을 안다. 이 순간에도 뱃속에 있는 태아가 잘못될까봐 아이 걱정만 하는 어미의 마음......
그리고선 신랑분이 회사에서 오고 있는 길이라고 금방 올 거라고......다 잘 끝나겠죠? 계속 걱정되는 말만 반복하고 계신다.
이 환자분도 셋째아이라 한다. 혼잣말로 갑자기 첫째, 둘째가 보고 싶다고 하신다.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그 마음을 나도 겪어봤기 때문에 너무도 잘 알겠더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아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갑자기 직업의식이 튀어나왔다. 안전하게 모든 게 잘 끝나있을거라고.....
다행히 수술은 너무나 잘 마무리 되었고 아이는 주수에 비해 빨리 세상 밖으로 나온 터라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시켜놓고 나만 퇴원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우린 전문가고 아이는 전문가가 전문 시스템으로 잘 케어할테니 환자분은 산후조리 잘 하시라”고 안심시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