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가 귀중한 아침에 작은 딸 머리를 바삐 묶는데 물어봅니다.
“엄마! 엄마 진짜 간호사야?”
눈을 마주치니 눈빛이 제법 진지합니다.
“응! 엄마 간호사야”
이렇게 묻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행정업무를 하는 간호사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간호복 입은 모습을 아이들이 본 적이 없으니 아이들은 제가 간호사인지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 아이들이 제가 간호사인지 인식하게 생각된 건 코로나19 유행 이후부터였죠.
대유행을 몇 차례 거치면서, 특히 초기에 제가 선별진료소 근무를 할 때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우리 엄마 코로나 검사한다고 해서 유치원 선생님들이 식겁을 하시며 전화가 왔었지요.
비단 아이들 뿐 만 아니라 남편의 회사에서도 제가 근무하는 병원 직원들이 코로나 전수조사를 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배우자나 동거인이 검사 받은 경우 출근하지 말고 결과 나올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누가 뭐라 한 적은 없어도 가족들은 엄마가, 아내가 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주위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래서 참으로 미안하고 죄스러웠어요.
아마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워킹맘들은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 의심 환자 본 날 이브닝 끝나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문 밖에서 옷 갈아입고 들어갔다는 선배님, 코로나 환자 간호한 날은 아이와 남편을 아예 시댁으로 보내고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후배, 병동에 코로나 환자 인공호흡기 치료한 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밀린 미드만 본다는 동기.
가족들은 나를 원망하지 않고 항상 힘내라고 조심하라고 걱정해주고 응원해주었어요.
처음에는 나의 가족들을 조금 멀리하고 피하던 사람들도 매스컴이나 보도 매체에서 의료진에 대한 노고, 감사, 경의 등의 기사 보도들이 나오자 시선이 따뜻해지면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더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는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두게 하였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나 응원 같은 보이지 않은 끈들은 더욱 가깝게 했어요.
이젠 엄마가 간호사인 걸 아는 아이들은 종종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엄마는 왜 간호사야?”
“예서가 아프면 엄마가 약도 주고 옆에서 지켜주고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아프면 엄마가 간호사라서 해줘야 해. 그렇게 하는 게 엄마 일이야”
“그럼 엄마는 좋겠다. 아픈 사람들 돌봐줄 수도 있고... 엄마가 같이 있으면 아픈 사람들은 안 아프게 되고.....”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말을 들을 때마다 전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했던 게 생각이 납니다.
천생 간호사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