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이상했다. 일찍 눈이 떠졌고, 처음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이클을 탔다. 그리고는 피곤해져서 그 좋아하는 아침밥도 안 먹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침을 먹고 운동을 가야 했다. 그런데 힘이 나질 않았다. 누워만 있고 싶고 자고 싶었고 또 실제로 잠이 왔다. 최근 잠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핑계인 것을 알았지만, 그냥 계속 잠을 잤다. 알고 있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는 항상 잠을 잤다. ‘출근’이 하기 싫었다. 정확히는 Trauma bay(Tbay)로의 마지막 출근이 하기 싫었다. 끝나버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시간은 갔고 최대한 미룰 수 있는 시간까지 미루다가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 먹으려다가 출근 시간을 늦춰보기 위해 이것저것 더 먹었다. 진짜로 아슬아슬 해 질 때까지 버티다가 겨우 씻고 마지막이니 예쁘게 화장도 하고 출근했다.
처음으로 Tbay에 들어오던 날이 생각났다. 아주대학교병원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는 2016년 3월 진료를 시작했고, 나는 그 해 4월에 입사했다. 부서배정 전화를 해주셨던 선생님이 Tbay를 ‘권역외상센터의 응급실’이라고 하셨던게 기억난다. 그랬다. Trauma bay는 외상환자만 받는 응급실의 소생구역이었다. 그러니, 오는 모든 환자가 중환이었고,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듀티에 4명이 근무를 하며 1명의 중환자를 ‘팀’으로 간호했다. 신규시절 1명 몫을 못해 환자와 같이 일한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에 울면서 걸었던 퇴근했던 길도 생각났다.
갱의실에 들어서서 엄마 선생님(프리셉터 선생님)을 만났다. 의외로 괜찮은 것도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환자가 온다고 해서 다들 분주히 준비 중이었다. 이브닝 시니어 선생님이었던 엄마선생님이 일부러 나에게 리더를 잡게 했다. 카운트도 전에 리더를 잡았다. 배려해 주신 게 진짜 마지막인 것 같이 느껴져 울컥해 조금 눈물이 났다. 그래도 환자를 받아야 했으니까 심호흡을 하고 곧 도착한 환자를 받았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고 정리가 얼추 끝나니 어색하게 준비실로 나를 불렀다. 굿바이 파티였다.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이 수고했다며 축하(?)해 주시는데 결국 또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Tbay 첫 신규" 그게 내 타이틀이었는데…. 선생님들이 ‘첫 부서라서 그래~’라며 위로해 주셨다. 하지만 Tbay는 내게 그것보다 큰 의미였다. 나의 자부심이 되어주던 내 첫 부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서로 으쌰으쌰 격려하는 게 느껴지던 내 부서. 내가 나고 자란 내 부서…. 둘러앉아 케이크와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Tbay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됐다. 마지막 전투가.
이후로 내리 7명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막아뒀던 Tbay1자리까지 열었다. 센터장님이 수고했다며 피자를 사줘서 피자를 먹고 있으니 또 연락이 와 급하게 먹고 8번째 환자를 이제 진짜 내 마지막 환자다! 라는 느낌으로 리더를 잡고 마무리하는가 싶더니, 또 동시 내원 오토바이사고 환자 2명이 왔다. 급하게 챠팅 하던 것을 마무리하고 액팅을 뛰었다. 이브닝과 나이트가 겹치는 시간이라서 인력이 많았다. 평소에 RN 4명이 팀간호로 일하는데 마지막 중환은 나를 포함해 5명이 받았다. 게다가 액팅이 거의 Tbay 원년멤버이다 보니 손발이 척척 맞아 빠른 처치로 환자가 빨리 퇴실했다. 이 느낌! 이 느낌을 좋아했다. 중증환자를 빠른 처치로 우리의 '협력'으로 빠르게 처치하고 보냈을 때의 뿌듯함, 서로의 수고함을 이야기하는 것. 팀 간호로 이루어지는 Tbay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것. 마지막으로 느껴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지막 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후배에게 줘야 할 것이 생각나 준비실로 가다가 내 파티를 준비하는 걸 또 목격해 버렸다. 아이고! 모른척하기로 약속하고 다시 Tbay로 가서 정리하다가 일을 전부 마무리하고 준비실로 갔다. 너무 예쁜 케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장미로 장식된 하트모양 케이크에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분홍색 토끼가 올려져 있고 케이크 위에는 ‘Happy 은지's day’, 아래에는 ‘은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실감이 났다. 내가 떠난다는 것이. 따뜻하고 진심이 가득한 응원에 나는 다시 울어버렸다. 이놈의 눈물은 왜 이리 끝나질 않는지…. 내 대체로 들어온 신규선생님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고마웠다. 내 이후로 Tbay에 신규를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꼭 1년에 1명씩 들어왔고 그렇게 4명의 즉, 4년간의 Tbay신규선생님들이 잘 다녀주고 있다. 고마웠다. 나름 특별히 생각하고 아껴줬지만 아마 티가 나지 않았겠지?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함과 아쉬움이 앞섰다. 파티를 하며 한 명 한 명 보는데 선배 선생님들껜 더 열심히 도와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후배 선생님들에겐 더 많이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더 이렇게 눈물이 나나 보다. 미련이 남아서.
하루 종일 엉망이 된 Tbay를 치우며 한 편으로 ‘그래, 여기서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안 돼. 끊임없이 움직이고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 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서 어쩌나. 우리 은지.
더 성장할 Tbay의 앞날을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고 속상하지만 그러니 더 열심히 내 목표를 향해 쫓아가면서 후에는 꼭 Tbay에 도움이 되고 싶다. 'Tbay 출신 RN' 이제 이게 내 타이틀이다.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내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