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동은 혈액종양내과 병동으로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항암치료의 스케줄에 따라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6박 7일 동안 입원해서 항암제를 맞게 되는데, 환자들에게는 입원과 동시에 힘들고 무료한 시간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보내는 방법은 환자들마다 제각각이다.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십자수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옆 환자들과 수다를 떨거나, 잠을 자거나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료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중에서도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환자가 있는데, A4용지에다가 몇 번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을 하다가 하나의 글귀가 완성이 되면, 예쁜 색지에 예쁜 글씨체로 옮겨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우리 간호사들에게 한 장씩 나눠준다.
어느 날은 입원환자가 많아서 정신없이 바빴던 날이었는데,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중 그 환자가 말을 걸었다. 구강암 환자라 말이 어눌해서 2번 정도 다시 여쭤본 후에야 A4용지를 찾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급하게 종이만 전해주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정규 바이탈 시간이 되어 혈압을 재러 갔는데 아까 A4용지를 찾던 환자가 무심하게 툭툭 치며 주황색 색지 한 장을 건넸다. 그 종이에는 내 이름 세 글자로 된 삼행시가 예쁜 글씨체로 채워져 있었다.
To. 장지수
‘장’하다 내 딸 하시던 우리 부모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금껏 자식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사랑, 항상 감사하며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쭈~욱 노력하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 잃지 않고 자식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겠노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살면서 그 누구도 내 이름으로 이렇게 장문의 삼행시를 써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었고, 정신없었던 하루를 보상받는 것 같은 선물 같은 종이였다.
덕분에 그날 부모님에게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내 이름 삼행시가 적힌 종이로 대신해 전할 수 있었고, 그 종이를 읽으며 흐뭇해하시던 부모님의 표정을 보며 그 환자에게 정말 감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4주 뒤 그 환자는 항암치료를 위해 또 입원했고, 침상에는 여러 권의 책들과 색지들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색지들은 예쁜 글씨의 좋은 글귀들로 채워져 우리에게 감동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