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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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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란? 의 질문에 대해서....

어느덧 17 .

돌이켜 보게 된다.

앞뒤옆 볼 것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가정간호팀에 오기전까지는.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만 십여년 근무를 했던 나는.

환자는 내게 있어 그냥 일.

환자의 이름대신 진단명으로 불리울 뿐이었다.

가정간호사로써의 나는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며 과거를 돌이켜

인생을 다시금 그리게 한 부서 이기도 하다.

 

엄마가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희귀한 근육병을 앓고 있었던 이**

기도관과 비위관을 교환하기 위해 방문한 집에는 아들만 둘.

두명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상태 였고. 엄마는 죄책감에 이혼 후 집을 나간 상태였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돌보는 상태였으나 항상 밝고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아팠던 20대 두아들은 성숙하지 못했고 수시로 아버지에게 욕설을 하기도 일수 였다. 주위에서는 시설로 보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고 하셨지만. 완강하시다.

아버님. 저럴 때 좀 혼내세요. 아무리 아파서 누워있어도 자기 감정을 컨트롤해야 본인도 덜 힘들죠

라고 하면 그냥 씩 웃고 마는 아버지.

어느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애네들은 나보다 더 먼저 하늘나라에 갈껀데. 내품에서 보내는게 부모로써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나랑 이렇게 살아 있는 동안은 다 받아 주려고 해요. 저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이기도 하니까...”

나도 두딸이 있는 엄마로써.. 나라면?. 나였다면?

항상 매순간 온화한 감정으로 저럴게 할 수 있었을까...

너무 마음이 아프면서도 옹졸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영하 10 도를 웃도는 추운 겨울..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였다.

“**이 하늘나라 갔어요.. 호흡기가 빠져있었는데. 내가 화장실에 있느라 못봐서... 그동안 너무 감사 했습니다.”

하루종일 눈물 때문에 운전이 너무 힘든날이었다.

 

40대 중반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낳고부터 다리에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거동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간 정밀검사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2주에 한번 소변줄을 교환해 주러 방문을 한다. 방문을 하다보면 한달에 한번 여자들이 꼭 하는 생리주기가 겹칠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고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에게 생리대를 갈게할 때 마다 너무 수치스럽고 마음이 힘들다고 한다. 아직 철이 없는 아들들은 엄마 언제 폐경돼? 짜증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고 한다. 나도 같은 여자로써. 생각만해도 그 상황이 얼마나 창피할까?.

이분의 삶속에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

저였어도 너무 속상했을꺼 같아요.. 근데 너무 죄송해요. 뭘 도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휴. 무슨 말씀이세요. 간호사님이 제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힘이되요.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하겠어요!!!. 잘 들어주시고 제 편이 되어 주시니 전 간호사님이 너무 좋아요

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그냥 듣고 있었던게 다인데.

고맙고 감사하단다.

순간 머리는 멍해지고 마음에 불을지핀 듯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내가 마음이 힘들때는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된다는 것!

그 또한 간호사로써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는것!

그제야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뇌병변이 있는 20대 딸과 둘이 사는 엄마는 항상 웃으면 반갑게 반겨주신다. 난 기도관과 비위관을 교환해 주러 2주에 한번 방문을 한다 .

어느날 근심어린 표정으로 선생님..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너무 걱정이예요. 이 전세금으로는 갈 곳도 없는데 ..”

남편도 아들도 같은 뇌출혈로 사망한 걸 직접 격었고 절대 놓을 수 없는 남은 가족 하나. 딸과 단둘이 살아가는 엄마는 간호사인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하루 종일 심란하다. 자기전까지 머릿속에 **네 집생각.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나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틀 뒤 어머니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 주인이 조금 더 살라고 하네요. 아휴..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순간 너무나 뛸 듯이 기뻐 소리쳤다.

어머 !! 너무 다행이예요.. 진짜 걱정 많이 했는데..”.

내 가족도 아니고, 내 친인척도 아닌일에 이리도 걱정과 고민과 기쁨이..

내 자신이 의아스러울 정도 였다.

.

.

추운날에는 캔커피를 따뜻한물에 담가 놓았다가 내주머니에 넣어주는 그들.

치료가 끝나고 나갈 때 보면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놓는 그들.

더운 여름에는 과일을 갈아서 시원하게 쥬스를 만들어 건네는 그들.

감자랑 고구마를 내가 올 시간에 맞춰서 삶아 놓는 그들.

나에게 그들은..

나를 웃게 했고 나를 울게 했다.

달려왔던 시간들 속에 내마음속 그들은 왜 없었을까..

나의 간호사로써의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

어느 글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한 직업을 10년 이상 종사 했다면 그 직업은 자기의 적성과 맞는거라고.

이 일을 후회했던 적도 많았고 내 적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지만. 어느덧 이렇게 오랜시간 이일을 하는걸 보면 이 일은 내 적성과 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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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주 조금.....

간호사란? 의 질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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