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간호하며 바쁜 근무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 환자의 위생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때 아쉬웠던 점은 환자를 제대로 씻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재원기간이 길어지는 환자는 간단한 기본간호로는 쌓이는 각질 등을 해결할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때라도 밀어드리고 싶지만 중증도 높은 환자의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황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환자의 기본 간호를 위해 노력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40대의 남자 환자가 알코올 진전 섬망을 관찰하기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알코올 진전 섬망은 보통 음주 중단 후 1-3일째 시작하여 4-5일째 최고조에 이른 뒤 합병증이 없으면 7일 안에 사라지는 증상으로 환자는 마지막 음주가 2일 전이라고 하였다. 입원 당시 퀴퀴한 냄새가 나며 씻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약간의 손 떨림 증상이 있었지만 환자의 의식수준은 거의 명료한 상태였고 활력징후도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의료진의 질문에 네, 아니오의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였고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의 근무가 끝날 때 까지 환자는 별다른 이상 증상 없이 계셨다.
하지만 그 다음날 출근해서 만난 환자는 180도 변해있었다. 예상됐던 알콜 금단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낙상 위험성 등 환자의 안전 문제로 처방에 따라 억제대로 묶여있었는데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억제대를 어떻게든 빼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환자의 심장은 분당 120회 이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고 진정을 위한 약물을 정해진 시간마다 주입하고 있었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환자는 환시가 심해 벌레가 여기저기 기어 다닌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협조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안전한 상황을 확보하고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처방에 따라 환자는 진정 치료를 하며 차츰 수면 상태에 빠져들었고 긴 잠을 자기 시작했다.
며칠 뒤 환자의 상태가 양호해져 진정 약물 용량을 감량하며 천천히 환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입원 당시부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라 일단 하나씩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회복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주치의와 상의하여 다리 억제대를 제거하고 다리의 각질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아 때수건으로 밀어내고 로션을 발라드렸다. 내 몸의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는 것처럼 내가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환자가 컨디션을 회복하여 손 억제대도 제거하게 되었고 환자분께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아 비누와 함께 세수하도록 침대로 갖다드렸다. 환자는 구석구석 시원하게 얼굴과 손을 닦으며 고맙다고 쑥스럽게 말을 건네셨다. 일반 병실로 이실 가기 전에 환자는 스스로 양치질도 할 정도로 좋아지셨다.
환자가 깨끗해지니 간호하는 우리들도 환자를 대할 때 더 편해진 느낌이었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환자에게 직접 기본간호를 하도록 참여시킨 후 환자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환자를 몇 달 뒤 병원 근처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동료 간호사들과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환자분이 과연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사복 차림의 간호사를 못 알아 보시길래 중환자실 간호사라고 인사를 드리니 이제야 기억이 난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왜 병원에 오셨냐고, 어디 아프시냐고 물으니 퇴원 후 병원에서 연계하여 알콜 치료 센터에 다니신다고 하셨다. 전보다 한층 밝고 건강해 보이는 환자에게 잘 지내 보여 다행이다 말씀드리니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며 퇴원 전 중환자실에 한번 들려보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못 갔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고 하셨다.
그 후에도 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에게 직접 간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틈틈이 제공해드렸고 나의 믿음대로 환자가 하루하루 다르게 컨디션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것 하나부터 환자를 위한 진정한 간호가 시작된다면 환자에게 빠른 회복이 찾아온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환자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실천하는 간호사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