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오복음 (7,6.12-14)* 지금으로 15년 전 수술실 마취과 간호사로 처음 입사했던 새내기 시절이 생각난다. 실습도 해보지 않았던 수술실 또한 마취과라는 특수부서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선 곳이었다. 병동 실습과 응급실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던 간호 현장과 사뭇 다른 현장이 었다. 병동에서 수술실에 내려온 환자들은 의료진들과 중요한 사항을 확인 후 의료진들은 일사분란하게 수술 준비를 하고 의사 간호사 간의 소통을 직접적으로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 수술실 현장이었다. 환자는 마취 되어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모니터로 모든 것을 알려 주며, 모니터에 맞게 약도 주고 가온도 해주며 수혈도 해주는 것이 어린 신규 간호사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기계에 대한 두려움에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난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를 지나 마취과 간호사로서 15년차가 되었다. 한 부서에서 이렇게 오래 있었구나.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한 해 한 해가 마취과 간호사인 내게는 다르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지식과 기술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어 수술 받으러 오신 환자들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또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환자들의 통증은 당연한 거라 생각하며 통증조절을 위해 정해진 진통제를 투여하였다. 마취 합병증으로 섬망이 오신 분, 짧은 회복실 체류 시간 동안 “다리를 들어 달라” “다리를 주물러 달라” “어깨 좀 받쳐줘라” 또는 반말로 “아가씨 이 것 좀 봐요” 등등의 요구를 듣다 보면 진이 다 빠져 환자 분이 빨리 병실로 가기를 바랬던 적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취과 간호사로 익숙해지고 마취과 학회, 연수 강좌를 통해 지식이 쌓여 가면서 간호사로서의 역할과 진심으로 수술 환자 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환자분들도 눈에 들어오고, 대기실에서 기도로 수술이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도 알게 되었다. 수술이 끝나면 얼마나 아플까? 그들이 비록 마취로 정신은 혼미 하지만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다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아마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첫 아이를 낳을 때의 일이다. 제왕 절개를 위해 수술 준비를 하고 이동 침대에 몸을 실었을 때 난 처음 간호사가 아닌 정말 환자가 되었다. 수술 동의서 작성할 때 나오는 지문들은 모두 나에게 일어날 것 같았고, 환자복을 입었을 때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서늘한 느낌이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길은 매일 내가 다녔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나를 기다리던 선배님들과 후배들의 손길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마취를 하는 동안 손잡아주며 마취될 때까지 기다려 주던 선배, 후배들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병실로 돌아온 나는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느꼈고 자가 통증조절 장치를 누르는 순간 오심, 구토가 심해 통증조절 장치는 누르지도 못하고 밤새 뜬 눈으로 통증을 견뎌냈다. 하루 이틀 지나니 통증도 좋아지고 몸도 회복되어 갔다. 엄마가 되는 이 첫 경험은 간호사로서 내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분만 휴가를 마치고 마취과 간호사로 복귀한 나는 어느새 대기실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고, 통증 때문에 힘들어 하는 회복실 환자의 요구를 웃으면서 대응하고 있었다. “간호사도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간단한 진리를 그동안 왜 난 몰랐을까? 오늘도 나는 수술실 문을 들어서면서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