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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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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함께한다는 것은

201611. 첫 만남.

내가 일하는 곳은 순환기내과 병동이다. 여느 때와 같은 데이 근무 날이었다. 이곳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생 신규였던 나에게 벼락같은 30여개의 추가오더가 들이닥쳤다. 다름 아닌, ‘심장 이식을 등록하기 위한 각종 검사 오더였다. 난생 처음 보는 검사 항목들 앞에 나의 머리는 백지장처럼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차지 선생님은 함께 오더를 읽어주며 라벨을 뽑아주셨다. 라벨이 모두 출력되기까지도 한참. 검체 바틀에 모두 붙이고 나니 이번엔 엄청난 양의 채혈이 필요하단 사실에 정신이 아득했다.

안 그래도 자그마한 분인데...’.

그랬다. 심장 이식의 주인공은 뽀얀 얼굴을 가진, 웃는 얼굴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아주머니였다. 심부전이 진행되어 체내인공심박동기 삽입을 위해 입원한 중에, 교수님이 심장 이식 등록을 권유하셨던 것이다. 심장 이식을 위한 첫 단계에 내가 함께 하자니 긴장되면서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장기 이식 센터에 등록을 하고, 34일의 입원기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로 짧고도 긴 정을 나눴다. 아주머니는 예정대로 퇴원하셨고, 나는 그 후로 2~3번 정도의 장기이식 등록 과정을 더 경험했다. 차츰 능숙하게 그것들을 해결했고, 첫 번에 느꼈던 긴장감도 조금씩 수그러지는 듯 했다.

 

2017년 여름. 기다림의 시작.

하루는 옆 병동에서 환자가 전동을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의 차트를 열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의무기록을 보니 분명했다. 내가 첫 심장 이식 등록을 도왔던 그 환자였다. 증상이 악화되어, 약물 치료와 이식 대기를 위해 입원한 것이었다.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병동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뽀얀 얼굴,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하는 미소. 환자를 침상으로 안내하고 자리를 정리하는 내내 그 때 계획했던 일본 여행은 다녀왔는지’, ‘간호학과를 다닌다던 딸은 잘 있는지조잘조잘 안부를 물었다. 이 병동에서 그녀를 맞이한 첫 번째 간호사가 다시 라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감사하게도 나를 기억해주었던 아주머니는 즐겁게 답해주셨고,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겨내고 계신 듯 했다.

하지만, 그녀가 심장 이식을 받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다인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들 틈에 신경이 곤두서는 날도 있었고, 이식이 준비되었다가 취소되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함 안에서 힘든 시간을 지내야했다.

 

201711. 심장이식.

이식 리스트에 등록한지 1, 다시 입원을 하고 이식을 대기한지 5개월. 드디어 심장 이식 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수술장에 들어갔단 이야기까지 듣고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안부를 찾아 물었다. 수술 후 만 하루가 지난 시점.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새 심장과의 첫 번째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를 다시 병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격리실 문을 열었다. 여전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덥석 손을 잡았다. 이전보다 손은 더 따뜻했고, 그녀는 심장이 뛰는 것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상기된 아주머니의 얼굴만 봐도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교적 젊은 환자였고 전신 컨디션이 좋아 금세 회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2주 정도 지났을 때, 이식 거부반응이 확인되어 입원기간은 연장되었고 생소한 검사와 처방, 여러 복잡한 간호 처치들이 행해졌다. 그런 중에도 나을 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용기와 밝은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긴 시간을 견뎌주셨다.

벚꽃은 과연 병원 밖에서 볼 수 있을지 막연한 계획만 세워보던 그 때, 교수님은 크리스마스 전에 집에 갈 수 있겠다며 선물 같은 퇴원 소식을 전하고 가셨다. 퇴원을 하는 날까지도(정확히는 퇴원 전날 나이트근무에) 나는 아주머니의 담당 간호사였다.

누군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하는 순간에, 감히 함께할 수 있었음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돌이켜보건대, 그토록 서툰 내 모습을 보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던 것은, ‘아주머니도 나의 처음을 응원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날 밤은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대신, 그런 나의 마음을 담아 퇴근 전 짧은 편지를 남겼다. ‘이식의 시작부터 또 다른 시작을 앞둔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퇴원하면 뭐가 제일 먼저 하고 싶으세요?”. 그녀는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차려주는 거요.” 우린 마지막으로 손을 마주 잡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그녀가 외래를 방문하거나, 검사를 받으러 오는 날이면 은근히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검사결과가 나쁘진 않을지 걱정도 하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좋아졌을지 기대하기도 할 것이다.

시작을 함께한다는 것은, 긴장과 설렘.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응원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닐까

 20l8년에도 그녀의 새 심장이 힘차게 뛰어주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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