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생각나는 키다리 아저씨가 한분 계신다.
2년전 5월 5일.
소아청소년과 병동에서 근무하던 나는 어린이날이여서 외출하는 아이도 많고 휴일이여서 여유로운 이브닝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근무를 하는 중 핑크색 마이를 입으신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키 큰 중년의 신사분께서 병동에 아이들이 몇명 입원해 있냐고 묻는 것이였다.
'왜 이런게 궁금하지..?'라는 생각에 "대략 30명이요. 그런데 왜요..?"라고 답했고 아이들에게 모두 케잌 선물을 해주고 싶으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브닝 선임 간호사였기 때문에 혹여나 모르는 사람이 주는 케잌을 먹고 아이들이 탈이라도 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괜찮다고 사양하였다.
홀연이 사리진 중년의 신사분은 병원지하에 있는 베이커리의 직원여러명과 함께 베이커리에 있는 모든 케잌을 들고 나타나 "저 나쁜 사람아닙니다. 저도 15층에서 오늘 퇴원하는 길입니다. 어린이날인 오늘만이라도 아이들 좋아하는 케잌 한 조각씩 먹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가지고 왔습니다."고 하며 간호사실에 잔뜩 놓고 가버리셨다.
미쳐 사양할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결국 보호자분들에게 설명 후 동의를 받고 병동에 입원해 있는 모든 환자들과 보호자에게 케잌을 파티용 접시에 예쁘게 담아 모두 나눠드렸다.
어린이날에 외출도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던 아이들에 "키다리 아저씨께서 선물해 주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케잌을 선물해 주니 해맑은 표정으로 정말 좋아하였다.
그런 모습들은 사진으로 찍어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을 전송해 주었다.
키다리 아저씨께서는 퇴원하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케잌먹고 싶다고 떼쓰는 아이를 보았는데 지하 베이커리 케잌은 비싸서 못 사준다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케잌을 사오셨다고 했다.
이후 키다리 아저씨께서는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꼬박꼬박 보내주셨다.
외래로 내려오고 나서 맞은 두 번째 어린이날..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나 연락을 드렸더니 뇌경색으로 부산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하셨다.
아저씨께서는 올해는 자신이 아프셔서 아이들 선물 못 챙겼다고 미안해 하셨다.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많이 행복해 했습니다. 빨리 건강 되찾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