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계선에서 만난 소중한 공감
첫 임상을 시작한 응급실에서 환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맞이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여 환자가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 난생 처음 보던 피와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환자를 보았습니다. 한참 CPR을 하고 있던 도중 발을 동동 굴리며 가족들이 병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편의 모습을 보고 주저앉은 가족들은 우리에게 무릎을 꿇으며 한번만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했고 끝내 그 환자를 살리지 못했지만 저에게 환자의 죽음을 처음 알게 해준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보호자들의 오열하는 그 모습을 잊지 못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뎌지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힘들어 질수록 환자의 슬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아 빨리 하고 퇴근해야하는데 왜 계속 옆에서 울고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처음 임상에 뛰어들며 했던 마음가짐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다시 임상 생활을 시작 하였고 이번에는 응급실이 아닌 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을 공감하는 마음가짐을 잃어가던 도중, 매일 환자를 만나는 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환자의 통증과 두려움에 대해 이해하기 보다는 업무를 하는데 급급했고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이 힘들기만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환자를 자세 변경부터 먹는 것, 입는 것까지 다 직접 해주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간호 하는 일이 버겁기만 했는데 매일 그 환자를 만나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면서 감정의 공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SBS 화면을 보면서 “라면 먹고 싶다”라는 말을 하여 코에 넣어져있는 관을 야속해하는 모습을 보았고, 반드시 나아지는 날이 올 것이라며 같이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페셜 라운딩을 돌던 도중 방금까지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던 환자가 자극에 반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부르는 이름에도 눈을 뜨지 못하며 의식이 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급하게 선생님들을 불렀고, 결국 환자는 중환자실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발령 첫 날부터 보던 환자가 눈앞에서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니, 머리를 쾅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회복되길 기도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 후, 환자는 병동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고 환자가 그토록 소원하던 코에 삽입한 관을 빼고 음식을 입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상태가 좋아지면서 휠체어로 움직이던 환자가 이제는 두 손으로 손을 지탱하여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출근할수록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한 마디씩 늘어가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간호와 함께 환자가 느끼는 행복감을 같이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의 죽음에 점점 무뎌져가던 제게 그 환자는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업무라는 급급함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일어서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환자를 만나게 되었고, 간호사가 진정으로 제공해야 할 “간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때 환자의 죽음과 고통에 무뎌져 감정을 잃어가던 간호사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환자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건강을 빌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간호라는 길을 걸어가면서 아직 수많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공감”이라는 간호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