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치유 받는 우리
3년 전 이 맘때, 나는 한참 어리버리한 신규였다. 이리저리 치이며 이브닝 신환을 받고 있었을 때 한 환자가 입원하였다. 180cm가 넘는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 환자는 다소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의 암 병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군대를 갓 제대하여 까까머리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그 환자는 잦은 코피와 두통을 호소하여 군부대 병원에 내원했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얼마 전 제대 후 검사한 결과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고 하였다. 내 동생과 동갑이었고, 그 당시 동생이 군대 복무 중이었던 터라 더욱 마음이 갔었다.
신규간호사로 병동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환자들을 마주대할 때 늘 긴장되고 위축되었던 내 모습을 지켜봐왔는지, 그 아이는 나에게 장난스러운 농담과 함께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곤 했었다. 라면을 너무 좋아하던 그 아이가 점심은 먹고 일하는 거냐며, 작은 컵라면 하나를 나에게 건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델이 꿈이라던 그 아이. 지금은 아파서 병원에 있지만 나중에 나으면 꼭 유명한 모델이 되겠다던 그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모습이 변해갔고,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는 검사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검사실에 내려갔다가 결국 신속대응팀을 호출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빛을 잃어가는 듯 했다. 결국엔 vital sign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혼미한 정신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상태로 며칠을 지속하다 숨졌다.
그 며칠 동안 그 아이의 힘없는 눈빛을 마주하였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신규간호사로서 처음 접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던 상황에서 그 아이가 나에게 힘을 주었듯이 나도 그 아이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이렇듯 인생의 급성기에 처해있는 환자들에게 늘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되려 환자들에게 내가 용기를 얻고 오는 일이 많다. 자신이 더욱 힘든 상황임에도 오히려 바쁘게 일하는 우리를 걱정하고 또 안쓰러운 시선으로 봐주는 환자들을 보며 나만 환자를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오늘도 나의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환자들에게 조금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새로 하고 앞으로 더욱 환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진 사명감을 가진 간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