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것, 다 털어내고 자유롭게 날아가렴~
제가 만났던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00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00를 처음 봤던 건 7~8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00는 22살의 군인으로 국군수도병원을 통해서 제가 일하던 132병동으로 처음 입원하게 되었고, 그 후로 한 달에 한번씩 우리병동과 131병동에 번갈아 입원하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00의 병명은 “HCC & HBV carrier”. 입대 전, 00는 신병검사에서 간에 약간의 이상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와 2차 검사를 권유 받았지만 이에 대한 추가 검사 없이 입대하였고 몇 달 후, 복통과 고열로 군병원에 입원, 그리고 다시 우리병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한 달에 한번씩 계속 되는 TACE 혹은 RFA 시술을 받았고, 10회 이상의 TACE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암은 점점 더 전이가 되었고, 시술 횟수가 늘어날수록 00의 간 혈관은 더 이상 시술이 어려울 만큼 손상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lung meta로 혈액종양내과에 의뢰되어 전신항암화학요법 치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는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 순회 때에는 항상 안대를 하고 자고 있어서 V/S 측정을 위해 몇 번씩 병실을 가야 했고, 통증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 간호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친구이다 보니 의료진이 이야기는 하는 의학용어를 찾아서 본인과 관련된 내용을 익히거나 본인이 앓고 있는 질병과 치료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스테이션에서 하는 이야기나 검사나 시술실에서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 듣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늘 질문이 많았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되게 예민하게 구네’, 혹은 ‘왜 이렇게 질문이 많지?’라고 생각하면서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친구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렇게 어린데, 나이가 지긋한 어른도 받기 힘든 시술을 수 차례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병실에 갈 때마다, 특별한 처치나 투약이 없더라도 한번 더 얼굴을 마주치고, 볼 때마다 더 많이 웃고, 많은 질문에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관심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까칠하던 00와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하루는 00가 수줍게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천사에요. 병원에 오는 건 무섭고 싫은데, 그래도 선생님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그 말은 제게 그 어떤 칭찬보다도 큰 감동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00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살고 있던 거제도에서 분당까지 먼 거리를 오가며 어려운 치료를 잘 견뎌내었지만, 2010년 8월 1일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때는 131병동에 입원해서 00를 담당하지는 못했는데, 한번이라도 찾아가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 한 것이 오래도록 후회로 남았습니다. 그 친구를 대할 때,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도 꿈이 있을까?’ 한번쯤 “꿈이 뭐에요?”라고 물어볼 걸, 그랬다면 더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으로 간호할 수 있었을 텐데…그런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00는 문득문득 제 가슴 속에서 나와서 웃던 모습, 아파하던 모습, 24살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여전히 아이처럼 해맑던 모습 등 다양한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00이야, 이제는 아프지 않지? 아프지 말고 자유롭게 날아서 영원히 평안하길 진심으로 바란다.......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