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한 눈에 보기에도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잠시나마 기다리시는 동안 지루함이 덜 하도록 말벗이나 되어드릴 수 있을까 조심스레 다가가 살피었으나, 어쩐지 저를 아주 호의적으로 맞아주시지는 않더군요.
내가 아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기 어려운 요즘 세상이기에, 저의 존재가 더욱 편하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말벗이 아니라 귀찮게 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 가만히 숨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몇 년이 됐는데 잘 낫지를 않네요.”라는 겨우 어렵게 하신 말씀 한마디에, 젊으신 연세에 10년 넘게 같은 질환으로 치료 받느라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한 시간 좀 넘게 대기실을 관찰하다 보니, 연로하신 분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습, 비교적 젊은 분들은 책이나 스마트폰으로 지루함을 달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머니 속의 애꿎은 스마트폰만 괜히 만지작거렸습니다.
바로 순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진료실 앞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환자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순서가 진행되는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자리를 떠나봤자 마음만 불안할 것 같은 생각이었어요.
진료실 앞 사원만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그래서 사원 얼굴은 예뻐야 하나 봅니다.
그래서 진료실 앞은 늘 환자로 가득한 곳이었나 봅니다.
일찍 도착하신 탓도 있지만, 5분 진료를 위해 정확히 2시간을 기다리신 환자는 어떠한 불평을 할 만한 기력도 남아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두 시간, 아니 지난 10년간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질병의 호전이나 치유의 기쁨이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혹시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런지.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힘든 마음을 헤아려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자란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냥, 잠깐의 불편으로 병원에 다녀가시는 것이라는 막연했던 생각이 죄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었다면 만 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료 후 궁금한 내용을 저에게 문의하며 배웅인사를 하는 중, 오늘 저의 존재가 불편을 드린 게 아니었다고 표현해주신 것만으로도 제게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격도 표현방법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모두 다릅니다.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은, 변함없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만큼 믿을 수 있기에, 우리는 따뜻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배우며 그 변화의 기적을 이루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기적을 이루어가는 동안, 우리의 공감에 대한 노력이 다양한 관심사에 맞춰 조금은 보여질 수 있도록 물리적인 방법 (컨텐츠, 공간활용 등)도 함께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따스했지만 외래 대기실에서 결코 창밖의 날씨를 느낄 수 없었던, 머리로만 이해하던
환자의 마음을 아직도 부족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만감이 교차하는 어느
봄 날 오후였습니다.